[한국교회비사] 한국교회학의 기둥 4. 기독교와 공산주의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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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7년! 공산국가 러시아의 출현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이는 세계 최초로 공산국가가 출현하던 순간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때가 1848년이던가. 이 공산주의 이념은 70년만에 러시아 공산국가로 구체화, 현실화한 것이다. 

1917년 바로 한 해 전에 언더우드 1세가 서거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언더우드 1세의 사명은 바로 “한국에 천국을 건설하는 데에” 있었다. 다른 말로 근대 한국을 기독교 복음 위에 세우는 것이었다. 그가 서거한 바로 다음 해에 출현한 공산국가는 한국과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대결 구도 때문에 실제적이고도 막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기독교와 공산주의 문제는 한국교회학과 그리고 그 근간이 되는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복음이 한국을 어떻게 변화시켜갔는가-의 네번째 기둥이 될 만큼 중대한 문제이다.

더욱이 지금 한반도 북쪽에 공산주의 이념이 실체로 자리하고 있다. 즉 주체사상에 입각한 김일성 세습왕조가 3대째 자리하면서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을 말살하고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가로막고 있다. 자유대한민국 또한 어떠한가. 공산주의가 새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난 문화막시즘-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이 사회 각 분야에 침투하여 자유대한민국의 근간을 갉아 먹는 중이다. 이러한 때 반기독교 유물론 공산주의와 이 공산주의의 최악의 변종형태인 주체사상에 대항하여 우리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자 누구인가. 한국교회밖에 없다. 반공산주의의 기치를 확고히 하는 것은 마땅히 한국교회학의 4대 기둥 중 하나이어야 한다.

2. 이승만의 ‘공산당 당부당’ 발표 시기

자랑스러운 우리의 국부 이승만은 일찍이 공산주의와 공산당의 실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온통 공산주의의 유토피아니즘에 빠져 있을 때였다. 미소공동위원회에서 보이듯 미국조차도 한국 해방 후 얼마간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를 철저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소공동위원회가 제안한 좌우합작 정부를 이승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좌우합작은 곧 공산체제로 통합되는 것임을 이승만은 2차 대전 후 세계 여러 나라의 경우에서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유엔총회에 호소했고 마침내 유엔으로부터 유엔 감시 하의 총선거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과 그 괴뢰정권인 김일성 일당이 반대하자 우선 선거 가능한 지역부터 총선거를 실시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승만이 공산당의 실체를 한눈에 꿰뚫어 보고 그 내막을 폭로한 때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1923년 「태평양」지에 실은 “공산당의 당부당”이라는 글을 통해서였다. 해방 당시도 그러했는데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6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던 그때는 더욱더 공산주의야말로 인류 사회에 선포된 메시아니즘으로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그러한 시대 상황에서 이승만은 ‘공산당의 당부당’에서 공산당의 폐해를 다섯 가지로 폭로했던 것이다.

류금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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