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소리] 농인과의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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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일만 하며 지낼 수는 없다. 적절한 취미로 생활의 리듬을 가지기도 하고 활력을 얻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미를 조사한 통계를 보면 11%의 높은 퍼센트로 1위가 등산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아웃도어 옷의 시장점유율이 높은 이유 중에 하나도 등산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음악감상 2위, 운동, 헬스 3위, 게임 4위, 독서 5위 등이다. 유튜브 보는 것이 취미에 안 들어가서 아마 순위에 올라가지 않은 듯하다. 농인들과 등산을 같이 가게 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다른 장애와 달리 걷는데 지장이 없고 보는 것도 잘 보니 산에 가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실제적으로 농인들이 산에 가는 것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산에 간다는 것은 그저 아무 이야기도 없이 산에 다녀오는 경우는 드물다.

가끔 혼자 산에 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2-3명이 같이 가기도 하고 동호회에서 같이 가며 친교도 나누기도 한다. 농인이 혼자 산에 다녀오는 것을 제외하고 청인들과 같이 산에 다녀온다고 가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갈 사람들하고 약속을 하여 어디로 갈 것이며 어디서 만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예전에 휴대폰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약속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미리 사전에 만나 약속을 한 경우는 약속 장소로 가면 되지만 각자 집에 있거나 직장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하여 약속 장소를 정하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 예전에는 팩스를 많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휴대폰의 대중화로 문자로 쉽게 약속하거나 수어를 아는 경우는 영상통화를 하여 약속 장소를 정할 수도 있다. 약속을 하고 농인과 청인이 같이 등산을 하게 될 때 수어를 모르면 하루 종일 그저 얼굴만 간간히 보면서 지내는 것으로 그날 산행을 마쳐야 한다. 사람을 만나면 서로가 대화를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언어를 모르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

이뿐만이 아니라 갈림길에서 농인이 앞서 오른쪽 길을 가게 되는 경우 그 길이 맞는 길이면 아무 상관 없지만 왼쪽으로 가야 되는 경우 뛰어가서 불러야 하는 일이 생긴다. 소리치며 돌아오라고 이야기하여도 전달이 안 되니 먼저 간 길을 가서 불러 세워 다시 뒤돌아 와서 왼쪽 길로 가야할 때도 있다. 요즈음은 휴대폰으로 연락하면 되지만 옛날에는 번거로운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산행이 끝나고 동료들과 식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수어를 아는 경우는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수어를 모르는 경우에는 통역자가 이야기를 전달하여야 한다. 다른 취미와 달리 농인들도 등산을 좋아하며 농인들끼리는 자주 모여 산에 가곤 하였는데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산에 가는 횟수도 좀 줄었고 식사를 다 같이 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모임이 많이 줄어들었다. 앞서 가는 사람을 뒤돌아보게 하기 위해 주머니에 조그만 돌을 넣어가지고 다니다가 던져서 상대방이 뒤돌아보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스마트폰과 같은 문명의 이기가 농인들의 생활의 패턴을 많이 바꾸어 놓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등산은 좋은 취미이다. 농인들과 같이 무언의 등산을 해 보면서 소리의 귀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수어를 제2 외국어로 채택한 나라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공공기관에서 수어가 잘 소통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해 본다.

안일남 장로
<영락농인교회·사단법인 영롱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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