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이별의 아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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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내에게서 온 편지다. 

<주 은혜 안에 무사히 도착한 것을 감사합니다. 그날은 송정리 고모 댁에서 자고 다음 날 택시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한 자가 넘게 덮인 눈 때문에 길과 논을 구분할 수 없는 삼십 리를 한 택시 운전사가 거절하지 않고 우리를 데려다 주었답니다. 눈보라가 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제가 혼자 여기 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험한 날씨 속을 혼자서 애들과 함께 무사히 도착했다는 생각을 하니 막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또 약해져서 운다고 나무라지 마십시오. 감사해서 울었답니다. 저희는 부모님께서 잘 돌봐 주시니 오히려 이곳이 삼 남매를 기르기 위해 예비해 둔 집 같기도 합니다. 외로운 것은 참아야 겠지요. 아버님께서는 당신의 성공을 비는 마음에서 다음 주일 날부터 교회에 나가시기로 하셨답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와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시는 아버님의 마음입니다. 당신에 못지않은 비장한 결심으로 이번 당신이 단행한 혁명 전선에 뛰어드시겠다고 말씀하시며 먼저 아버님이 건강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실 때 목메어 눈물까지 흘리셨습니다. 이런 사랑 가운데서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가정의 행복도 따르리라고 믿습니다. 손자 손녀들을 퍽 귀여워하십니다. 밤이 늦었습니다. 옆에서 지희(큰딸)가 “지희, 말 잘 듣는다”라고 쓰라고 하더니 잠이 들었습니다.> (1963년 1월 17일)

<뒤늦게 설 세배를 드립니다. 그동안 너무 북적거려서 편지를 쓸 여가가 없었답니다. 명절을 당신 없이 보내기는 처음이어서 저는 퍽 쓸쓸했습니다. 당신은 떡국을 특히 좋아하시는데 어떻게 지내셨나 걱정도 하며…. 그러나 당신은 친구와 제자들이 그냥 두지 않았겠지요. 저 없이도 즐거우시지 않으셨나요? 저는 혼자서 눈 오는 바깥 날씨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27일에는 어머님과 시동생이 광주로 떠났고(고입 시험을 볼 큰 시누이를 위해) 오늘은 막내 시누이와 아버님이 또 떠났습니다. 아버님은 교장 회의에 가셨습니다. 아버님 친구분들은 광주의 좋은 학교에도 계시고 장학사로도 계시는데 아버님은 이렇게 외딴곳에 또 교통도 너무 불편한 곳에 계셔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속이 상합니다. 이곳은 눈이 많이 오면 교통이 끊기고 또 눈이 녹으면 길이 너무 질어서 장화 없이는 걸어 나갈 수도 없답니다. 애들은 건강한 편이지만 철(큰아들)이 설사해서 약을 먹이고 있습니다. 곧 좋아지겠지요. 당신도 앞으로 공부를 계속하시려면 무엇보다도 건강하셔야 합니다. 

당신은 너무 화를 잘 내셔요. 간밤에도 별 잘못한 것도 없이 당신께 꾸지람을 듣고 꿈속에서 한참이나 울었습니다. 그랬더니 당신이 어서 성경이나 읽고 웃으라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울던 게 그리 쉽게 멎지 않아 흐느끼고 있었더니 그렇게 약해져서 어떻게 하겠냐고 또 꾸중이었어요. 깨어보니 꿈이었지만 어떻게 억울했는지 이번에는 정말 울었는데 흐느끼는 소리에 석(둘째)이 깨어 울어서 마침 잘 되었다고 함께 소리 내 울었답니다. 참 억울했어요. 그런데도 당신이 몹시 그리웠습니다. 당장 날아가고 싶을 만치.

지희가 옆에서 “아빠 과자 사서 오셔요”라고 편지에 쓰랍니다. 그 애는 당신이 사 준 책은 다 외워 버렸답니다. 글씨를 읽는 것이 아니고 그림만 나오면 “오물오물 아기 염소 풀을 먹네요” 하고 읽어버린답니다. 

정말 이렇게 떨어져 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래서 자고 일어나면 정해진 기도 소에 가서 오늘 하루도 맡아 주관해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떨어져 있으니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같이 있을 때 기도했던 것은 행복한 가운데 건성으로 했던 것 같아요.> (1963년 1월 30일)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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