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길] 상처가 있어도 쓰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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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지내던 분이 멀리 이사를 갔다. 그 분이 이사한 다음 날이다. 나 혼자서 조용히 그 집에 들렀다. 이 분이 이사 간 그 곳에는 필요가 없는 지, 책장이며 가구들을 그냥 버리고 갔다. 그런 집안을 한 번 둘러보고 나오는데 현관에 구두주걱이 보였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금 기다란 구두주걱이다.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나도 몇 주 전에 이사하면서 그동안 쓰던 구두주걱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런 구두주걱을 하나 사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참에 마침 남이 버리고 간 구두주걱이 있으니 그것 갖다 쓰면 되겠다 싶었다. 나는 그 구두주걱을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그 구두주걱의 목에 좀 촌스러워 보이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 그림 위에는 비닐테이프가 씌워져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아니 뭐 이런 것을 여기에다 이렇게 감아놓았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칼로 그 비닐테이프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단단히 붙여 놓았는지 잘 떨어지지 않았다. 몇 번의 칼질 끝에 그 비닐을 벗겨내는 순간이었다. 구두주걱의 한 쪽 끝이 땅바닥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그 구두주걱은 손잡이가 부러져 있었다. 내가 아는 그분이 손잡이가 부러진 구두주걱을 버리지 않고 비닐테이프를 감아서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괜히 칼로 비닐테이프를 벗겨 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냥 놔두고 쓸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또 붙여서 쓰자니 괜한 수고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 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는 남의 속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나는 교인들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고 내 마음대로 판단하지는 않았을까? 때로 교인들의 힘든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고 정죄하지는 않았을까? 교인들의 형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마음대로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교인들이 그렇게 하면 그렇게 할 만한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이해해 주는 좀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상처가 있어도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가 있으면 못 쓰는 줄 안다. 손잡이가 부러진 구두주걱도 쓸 수 있다. 조금 두툼하고 딱딱한 것으로 싸매면 된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저런 마음의 상처도 받는다. 그런 상처가 있어도 한 몫을 잘 감당하면서 쓰임 받을 수 있다. 사랑으로 덮어주면 된다. 사랑으로 싸매주면 된다.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목이 부러진 구두주걱처럼 인생 한 번 꺾인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도 그 누구의 사랑으로 싸매지고 덮어지면 쓰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상처 많은 나를 사랑으로 싸매어 쓰시는 주님처럼 나도 상처 받은 교인들을 사랑하며 목양의 길을 가야겠다. 나는 남이 버리고 간 그 구두주걱을 주워다가 다시 부러져서 못 쓰게 될 때까지 여러 해를 잘 썼다. 나도 그렇게 주님으로부터 끝까지 잘 쓰이기를 기도할 뿐이다.

민경운 목사
<성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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