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290)존 데이비슨 록펠러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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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교회의 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였다. 이것을 어머니에게 배웠다. ‘하나님을 친아버지처럼 섬겨라.’ ‘매일 기도하라’등 신앙적 삶을 강조했다. 그는 매주일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성실히 봉사했다. 그가 건강진단을 위해 병원 침대에 누어서 가는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는 성경구절이 벽에 걸린 것을 보는 순간 전율이 생기고 눈물이 났다. 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조금 후 시끄러워서 눈을 떴다. 의사는 ‘병원비가 없어 입원이 안 된다’, 환자의 어머니는 ‘입원 시켜 달라’고 울면서 사정하고 있었다. 록펠러는 곧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익명으로 지불하라고 했다. 얼마 후 그 소녀가 회복된 모습을 보고 기뻐했다. 자서전에서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 그는 나눔의 삶을 작정했다.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 병도 낳았다. 그 뒤 98세까지 살며 선한 일을 열심히 했다. 그는 회고하기를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했다.
록펠러는 자기 재산으로 자선사업하기로 결심했다. 그 후 자선사업에 몰두하여 시카고 대학교를 재건하고 록펠러 재단을 세워 병원, 의학연구소, 학교 등 문화 사업에 전념하였고, 교회를 설립하는데 최선을 다했으며 1937년 98세로 별세했다.
그는 1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 존 D. 록펠러 2세가 사업을 계승하였고 부통령을 지낸 손자 넬슨 록펠러 등 그의 많은 후손들이 정계, 재계에서 활동하여 미국의 유명한 록펠러 가문을 형성했다. ‘나는 남들에게 돈을 나누어주기 시작한 뒤로 오히려 재산이 더 불어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돈을 많이 번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이제 보람 있게 쓰는 것은 나의 사명이다.’라고 했다.
1890-1892년 시카고 대학 설립을 위해 6,0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고 그 후에도 3억 5,000만 달러를 기부하였다. 1891년 시카고 대학교 후원 모임에서 프레드릭 게이츠 목사는 록펠러에게 ‘회장님의 재산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불어나는 것보다 더 빨리 나눠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회장님은 물론 자녀 모두가 그 눈덩이에 깔려 죽을 것입니다.’라고 과격하게 한 말이 록펠러를 긍정적으로 방향을 돌리게 했다.
게이츠 목사는 록펠러가 석유사업에서 스탠더드 회사가 성공했듯이 자선사업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다고 믿었다. 자선사업은 시대를 지나 영원히 있어야 할 사업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록펠러에게 그의 천재적인 조직력을 자선사업에 적용해 보라고 권했다.
게이츠 목사는 ‘그저 돈을 나눠주는 즉흥적인 방식이 아니라 미국에 필요한 기관을 세웠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록펠러를 설득했고 그래서 맨 먼저 미국에도 파리의 ‘파스퇴르 연구소’와 같은 의학 연구기관을 제의하였다.
1909년 백만 달러 기금으로 록펠러 위생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그는 많은 미국인 의사와 과학자들을 전염병 퇴치를 위해 포섭했다.
당시 미국인들이 장티푸스와 디프테리아, 폐렴, 결핵에 걸렸으나 치료 방법과 약이 없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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