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삼손 신드롬(3) – 영웅 심리” <사사기 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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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 맞은편에서 오는 자동차를 보고 재빨리 차를 오른쪽 벽에 바짝 붙이고 상대방이 지나가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상대방 차가 움직이지 않고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유리창을 열고 자랑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지나가라고 손으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잠시 후 상대방 차가 가까이 오더니 검은 유리창을 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저씨, 여기 일방통행인데요. 길 잘못 들어오셨어요!” 얼마나 창피하던지 미안함을 표시하고, 얼른 창문을 닫고 뒤로 돌아 나갔습니다. 사실 좁은 길에서 상대방이 지나가도록 양보한 것에는 ‘나는 배려있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보다 차를 더 바짝 붙일 수 있는 운전 실력이 있다.’는 비교우위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착각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착각하며 삽니다. 삼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삼손이 블레셋 사람을 친 첫 번째 사건을 다룹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이나 단 지파를 위한 사사의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삼손의 영웅 심리와 경거망동으로 인해 발생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딤나의 여자와 결혼한 삼손은 (블레셋) 무리가 데려온 삼십 명에게 수수께끼를 내며 내기를 겁니다. 상품은 그들의 사람 수에 맞춘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의 큰 규모였습니다. 결혼 잔치 자리에서 삼손은 왜 이런 일을 했는지 주목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하여 사자를 죽이고(6절), 아스글론 사람 삼십 명을 죽이는(19절) 모습을 보며 우리는 삼손의 영웅적인 면모와 블레셋을 치기 위한 준비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했다는 이유로 삼손의 모든 행동을 정당하고 바람직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영웅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삼손을 바라보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과신하며, 영웅 심리에 빠져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맨손으로 사자를 죽이는 용맹 뿐만 아니라 삼십 명과의 지혜 싸움에서도 승리할 지력(知力)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사사의 일이 아닌 개인적인 이유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생각할 수 있는 지력(智力)은 없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큰 힘이 여호와께로부터 왔으며, 여호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의 사사로운 복수마저 할 수 없었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오늘의 사건입니다. 삼손에게는 약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머리카락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여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과의 영적인 통로가 차단’된 것이 ‘여자’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납니다. 이후 가사의 기생과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를 통해 지속적, 확대되어 나타납니다. 간직해야 할 비밀을 여자를 통해 누설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한 곳을 공격 포인트로 삼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만약’이란 가정은 의미 없는 것이겠지만, ‘만약 삼손이 하나님과의 영적 통로가 차단되지 않고 원활했다면 여자와의 관계가 그에게 약점이 되었을까?’ 질문하게 됩니다. 그랬다면 그는 ‘영웅 심리에 빠진 영웅의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소견에 좋은대로 살아가는 시대에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사사기에 등장하는 마지막 영웅적 사사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영웅 심리에 빠져있던 삼손은 어떻게 됩니까? 잔치가 거의 끝나가는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인 마지막 순간에 결혼의 기쁨은 사라지고, 협박으로 인해 답을 갈취한 사람들을 향한 분노와 자신을 배반한 아내에 대한 경멸이 가득했습니다. 이후 삼손은 계속 블레셋을 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14:19, 15:8, 15). 그러나 삼손은 여호와의 영이 임해 블레셋 사람을 치는 하나님의 역사를 행하면서도 여전히 만져서는 안되는 짐승의 시체를 만지는 부적절한 행동을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통로가 연결되기 위한 노력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하는 성도, 개인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성도, 여러 모양으로 봉사하는 성도,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과의 연결 통로를 통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이루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통로가 막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정당한 행동과 성품으로 행하고 있는 사람은 ‘영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통로가 막힌 채 봉사하고, 그 뜻을 행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소견에 맞는 ‘자기 의(義)’라는 영웅 심리에 빠져 있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온전하지 못한 행동을 통해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며, 그에게 임하시고, 그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그에 맞는 반응을 하는 이 어려움의 시대의 신앙적 영웅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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