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싶은이야기]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행복과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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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주의 철학자 칸트는 말하기를 “인간은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산다.”라고 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다 행복을 추구한다. 모든 인간의 목적은 행복 추구이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뒤를 따르는 향락주의자, 쾌락주의자인 ‘에피큐리언’들이 추구하는 인간 최대의 지향은 행복(Eudaimonia)라고 하였다.
그러나 칸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인간은 자기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살아야 한다.”했다. 이러한 사상을 윤리학에서는 ‘리고리즘’(Rigorism)이라고 한다. 이는 엄격주의, 엄숙주의이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아버지는 아버지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을 올바로 통솔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오래전 부산 송도에 40-50명의 어린 노동자들이 일하는 제품공장이 있었다 그곳은 초등학교 4,5학년 학생들이 일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 사정을 잘 아는 어느 교사가 말하기를 이 지역의 아버지들은 자신의 딸들이 12살에서 13살이 되면 공장에 보내서 돈을 벌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비로서 가장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비겁한 행위이다. 의무는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사람 된 도리를 다하고 사람의 구실을 다하는 것이다.
자기의 의무와 구실과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비겁하고 부끄럽고 저속한 일이다. 의무란 의롭기를 힘쓴다는 뜻이다. 인생은 자기의 의무를 다하였을 때 삶의 만족을 느끼고, 자신의 할 일을 다 했을 때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내가 아는 가정 가운데 9남매를 둔 가정이 있었다. 그 가정은 살림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는 고아원을 경영하였다. 놀라운 것은 그 부모는 9남매를 고아원생들과 같이 원생들의 방에서 똑같이 생활하도록 하였고 원생들과 같은 방법으로 훈육했다는 것이다.

후에 자녀들은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어려운 자들을 돌아볼 줄 아는 반듯한 인성을 갖춘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9남매가 모두 훌륭한 인성을 갖춘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자녀의 훌륭한 삶은 부모가 참다운 자기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이같이 성실한 의무의 이행에는 반드시 상이 주어진다. 자신의 당대가 아니더라도 후대에 만족과 기쁨과 칭찬이라는 정신적 보수가 따른다.
반면에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을 때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으며 칭찬이 따를 수 없게 된다. 행복의 추구를 인생의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한다. 행복의 추구는 결국 향락주의에 빠지고 쾌락주의로 향할 뿐이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자신의 고유한 의무수행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산다면 인간 사회는 훨씬 평화롭고 인류는 행복해 질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의무를 다할 때 거기에 하늘이 주는 행복이 기다릴 것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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