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이동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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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에 있으면서 두 번째로 시도한 것은 이동수업과 분단학습이었다. 이 학교의 교장은 의욕이 왕성했다. 꿈이 모습을 나타내고 그것이 실천에 옮겨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학교의 교장은 성경을 통해 환상을 많이 보는 분이었다. 그는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면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도 실천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 학교에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과학 교사가 있었는데 그는 실험기구가 부족한 이 학교에 와서도 불평이 없었고 자기 사비로 실험기구를 제작하여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꿈은 과학 교실을 하나 갖는 것이었다. 실험기구를 들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것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절대 교실이 부족했던 우리는 이 교사의 꿈을 실현하고 더욱 일반화하기 위해 이동수업을 고안해 냈다. 과학 교실뿐 아니라 국어, 수학, 미술, 음악 교실들을 만들고 학생들이 이동해 다니며 공부하는 이동수업안이었다. 거기다가 수업 형태는 분단학습을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학급마다 학습이 잘되도록 6~8명씩 분단을 만들어 공부하고 실험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지금까지 쓰던 책상을 치워버리고 원탁 테이블을 주문하여 각 교실에 배치하게까지 되었다. 나는 지금도 분단학습을 위해 원탁 테이블까지 만들어 학습한 학교가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동수업과 분단학습은 급속하게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학생들의 이동 상황을 조사하는 가상 모델을 미리 만들어 시뮬레이션으로 이동수업의 적부를 판단하는 그런 절차가 필요한 것인데 교장이 보는 주의 계시 앞에서는 무력하였다. 우리는 다른 학교보다 오 년이나 십 년은 앞선 교육을 실험할 생각이었다. 아무튼, 매일 출애굽 같은 대혼잡 가운데 이동수업은 시작이 되었다. 첫 번째 문제는 휴식시간이 부족하였다. 끝 시간을 잘 지켜주지 않으면 다음 시간에 맞추어 학생들이 이동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에 대해 휴식시간을 12분으로 하자는 안이 나왔으나 단순성이 결여된 계획은 영속성이 없었다. 둘째는 복도가 좁고 이동 인구가 많아 복도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 물을 뿌려도 해결이 안 되어 결국,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학생이 많아졌다. 셋째는 학생들의 가방이 무거워서 계속 들고 다니기가 힘들어 팔 병이 날 지경이었다. 이를 위해 개인별 교과서를 없애고 각 특수 교실에 필요한 인원만큼 교과서를 배치하여 누구나 빼볼 수 있게 하자는 안이 나왔다. 특수 교실에 들어오는 학생 수만큼 교과서를 비치하는 것이므로 어려운 학생이 교과서를 사지 않아도 되어서 퍽 좋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밑줄 치고 낙서하고 자기 마음대로 책을 쓰고 싶어 했다. 분단학습은 우열 학생을 잘 섞어서 리더를 하나씩 두고, 주어진 문제를 서로 토론해서 답을 내고 분단 학생 중 잘 모르는 자는 그중 우수 학생이 도와주는 형식이었는데 시간 중 충분히 토론할 시간이 부족했고 또 학생들이 그런 학습에는 익숙하지 못했었다. 그뿐 아니라 이런 학습 방법 때문에 우수 학생은 친구들에게 너무 시간을 빼앗겨 공부를 못하게 되고 전혀 수업 진도를 빠르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수 학생을 바보로 만든다고 아우성쳤다.

하나님께서는 창의적인 정신과, 협동하는 정신 등으로 인성을 개발하는 것을 원하시며 뛰어난 성적을 올리는 학생을 원하시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 게 분명했었다. 나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너무 괴로운 나머지 꾼 꿈이겠지만 이상한 꿈까지 꾸었다. 혼자서 큰 천막을 치려고 기를 쓰는 꿈이었다. 천막을 치려는데 폴대가 없었다. 나는 기를 쓰고 손으로 천막을 떠받들려 했지만, 천막은 바람에 쓰러지곤 했었다. 꿈을 깨고 나는 참으로 외롭게 이 계획을 밀고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교장 외에 나를 지지해 주는 세력이 없었다.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히 13:6)라는 말은 이 상황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성령을 앞선 것이었을까?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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