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뜻하지 않게 쓴 물을 만날 때” <출 15: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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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이루어지면…” 이런 간절한 소원을 가져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예 생활에서의 해방과 가나안에서 하나님 섬기는 삶이라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면서 애굽을 벗어난 그들이 ‘수르 광야’로 들어가 사흘을 걸었으나 물이 없었습니다. ‘현재의 목마름’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언제 샘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입니다. 그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그렇게도 갈망하던 샘을 만났습니다. 앞다투어 달려가 그 샘의 물을 마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물을 다 토해낼 만큼 쓰디쓴 물이었습니다. 그렇게나 찾던 물을 만났는데, 그 물이 쓴 물일 때 느끼는 실망과 배신감이 있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상했는지 그 샘의 이름을 ‘쓰다’라는 뜻의 ‘마라’로 지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도 원하던 직장에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 쓴 물입니다. 행복한 결혼을 꿈꾸며 결혼했는데, 쓴 물을 만납니다. 기도해서 얻었던 자녀로 인해 쓴 물을 경험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마침내 높은 자리에 올랐는데, 더 큰 스트레스와 불안의 쓴 물을 만나곤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합니다. 여기서 ‘원망’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밤을 새워서 원망을 쏟아내는 모습을 암시하는 단어입니다. 부정적 감정은 힘이 셉니다. 부정적인 말은 긍정적인 말보다 더 빨리 퍼지고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열 마디의 칭찬을 듣다가도 서운한 말 한마디에 원수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들 앞에 서 있는 모세, 인간적으로는 참 딱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사실 모세는 그 백성들과 호흡을 맞춘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이 백성 속에 아무런 세력도 없었고, 자신을 편들어 줄 가족도 몇 명 없었습니다. 광야를 지나며 백성들이 모세를 죽이려고 돌을 든 장면(민 14:10)은 모세가 정치적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었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 원망하는 백성들 편을 들 수도, 그렇다고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낼 수도 없는, 그야말로 중간에 끼어서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정말로 없느냐? 아닙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 가장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내용,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십니다. 영어 성경(NIV)에서는 이 나무를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다(the Lord showed)”라고 옮기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일 하나가 남았습니다. 간절히 부르짖으십시오. 부르짖는 자에게 주님은 주님의 방법을 보여주십니다. 기도할 때,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모세는 그 ‘한 나무’를 보았고, 그것을 샘에 던지니 쓴 물이 단 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열심히 견디고 걸어서, 마침내 샘에 도달했지만 그 샘이 쓴 물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부정적인 감정에 내 마음을 내어주면 안 됩니다. 둘째, 사람의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셋째,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한 나무’를 쓴 물에 던져야 합니다.

이 ‘한 나무’를 신약의 빛으로 보면, “나무에 달린 자”(갈 3:13)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셨습니다. 우리는 쓴 물이 상황에 대한 것, 또는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방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나 자신’이 쓴 물입니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오는 쓴 물이 있습니다. 이 쓴 물을 주님께서 대신 뒤집어 쓰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제 쓴 물이 단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출 15:25)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그들이 앞으로 붙들어야 할 중요한 원리를 주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 순종하고.. 귀 기울이며..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선언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26절)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힘이 없다고 누워 있으면 영영 걸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억지로라도 걸으면 힘이 생깁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를 치유해 주셔야 내가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움직이면, 말씀에 순종하여 걸어가면 치유가 임한다고 하십니다. 

간절한 소원과 오랜 수고에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게 쓴 물을 만났다면, ‘한 나무’를 그 물에 던지십시오. 그 십자가 사랑, 살리는 능력을 중심에 두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순종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홍순영 목사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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