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니고데모의 질문

Google+ LinkedIn Katalk +

인간을 겸손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아는 것이 많을 때이다. 가진 지식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배우려는 자세는 없고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 말하려고만 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 내 지식의 기준을 미리 세워놓고 다른 사람을 내게 맞추려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아는 것이 많아도 다른 이에게 배우려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요 겸손의 사람이다.

둘째로 가진 것이 많을 때이다. 있는 사람은 어딘가 있는 티를 낸다. 가난한 사람이 어울릴 수 없는 말을 하고 없는 사람을 위한 행동의 배려에 빈틈을 보인다.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없는 사람의 존경할 부분을 찾아서 예를 갖추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다.

셋째로 높은 명예가 있을 때 겸손하기 어렵다. 선거철만 되면 국회의원들, 고위 관리들이 시장에 가서 물건도 사고 지하철도 타면서 전시효과를 기대한다. 그러나 국민은 매스컴 안 타고 선거철 아니라도 가끔 시장에도 들러보고 버스도 타보는 선량들을 기대하고 있다. 가끔이라도 그 명예의 자리를 벗어나 무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려는 사람은 위대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는 겸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당대의 랍비였고 백성의 선생이었다. 더구나 그는 나중에 예수님의 시신을 위하여 몰약과 침향을 100근이나 준비할 정도로 부자였다. 또한 그는 바리새인이요 산헤드린 공회 회원으로서 오늘날의 국회의원 신분에 해당하는 명예를 가지고 있었다. 

니고데모의 위대한 점은 당시 무명의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랍비라는 자신의 신분을 다 벗어버리고 오히려 주님을 랍비라고 부르며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는 것이 많았고 종교 지도자였으나 주님께 가장 기초적인 문제인 거듭남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면서 가르침을 받으려 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는 바로 이 니고데모가 던진 질문에 있다. 거듭남의 체험이 살아있고 회심 사건의 감격에 온기가 있고 죽을 죄인 살려주신 은총에 보답하려는 겸손만 있다면 교회가 평화를 되찾을 것이요 노회나 총회의 정치가 깨끗해질 것이요 지식과 재물과 명예로 거만해진 마음들이 죄인 됨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