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골란 고원과 빌립보 가이사랴에 음행이 가득하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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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신 바니아스를 따른 유대인의 동성애 죄악

골란고원은 1967년의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1981년 12월에 이스라엘은 골란 고원의 점령지를 일방적으로 병합했다. 성서에 나오는 바산 지방의 도피처인 골란은(신 4:43, 수 20:8), 지리적으로 골란은 서쪽으로는 요단강과 갈릴리 호수, 북쪽으로는 헤르몬산(아랍어로는 앗샤이크 산), 동쪽으로는 간헐천인 알루카드 강(야르무크 강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지류), 남쪽으로는 야르무크 강이 경계를 이룬다. 정치적으로는 경계선이 달라져 이스라엘이 갈릴리호의 연안 전체를 차지하며, 1967년 6월 10일에 결정된 이스라엘-시리아 휴전선과 1974년 5월 31일에 체결된 군(軍)의 분할협정으로 수정된 휴전선 때문에 동쪽 경계선은 불규칙하다. 요단강의 수원 가까이에 있던 성읍인 골란 고원과 빌립보 가이사랴는 이스라엘이 요르단에게서 빼앗았지만, 아직도 돌려주기 곤란한 지역이다.

하스모니아 왕 알렉산더 얀나이우스(기원전 103-76년 재위)의 정복지에는 요단강 동쪽 팔레스타인의 거주지 대부분이 포함되었으며, 현대의 골란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가울라니티스라는 그리스어 지명이 붙어 있다. 헬레니즘 시대의 도시들에 있던 수많은 고대 유대교 회당의 유적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70년) 후 유대인이 살았음을 입증해준다. 6세기에 가산 왕국이 세력을 펴고 북쪽의 비잔틴 제국과 남쪽의 유목민 사이에서 완충국 역할을 한 골란 지역의 수도는 바니야스(그리스어로 파네아스)로 현재의 요단강의 발원지 부근에 있었다.

텔단은 단 지파가 정복하기 전에는 라이스 또는 레센이라고 불렸다. 분열 왕국 시대에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벧엘과 이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게 했던 단은 우상숭배를 책망받을 때마다 자주 언급된 성읍이다. (암 8:14, 왕하 10:29) 이곳은 유다 왕 아사의 요청으로 북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람 왕 벤하닷에 의해 파괴되었다. 성경에는 통일왕국 시대에 단을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로 언급할 만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빌립보 가이샤라는 예루살렘 북쪽에서 40마일이고 갈릴리 호수 북쪽에서 20마일 떨어진 헤르몬산 산속에 있는 성 데가볼리 지방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 중의 하나이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다메섹 남서쪽 약 80km 지점에 떨어진 곳으로 헤르몬산의 경사가 심한 산간 지방이다. 구약에서 바알갓(수 11:17) 또는 바알 헤르몬(삿 3:3)이라 불린다. 헤롯의 아들인 분봉왕 헤롯 빌립이 무너진 신전을 보수하여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디베료)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가이사랴라 하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동성애와 우상숭배가 성행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2021년 8월 15일에 아프간에서 무너진 이슬람 독재정권인 무장세력 탈레반이 붕괴한 지 20년 만에 전격적으로 카불에 입성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빈 라덴이 죽었는데, 이런 일이 가능한가? 강경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8월 31일을 시한으로 못 받아서 탈레반에 대한 공포로 탈출행렬이 이어져서 그야말로 카불공항은 아비규한이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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