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포럼] 숙군(肅軍)과 6.25

Google+ LinkedIn Katalk +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숙군이 없었다면 우리는 참으로 불행한 나라가 됐을 것이다. 북한 김일성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고, 6.25남침 시에는 적화통일을 위한 인민봉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남로당의 당수 박헌영은 조선공산당의 2인자로서 북한 정권의 부수상 겸 외무상이다. 그가 남한의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려고 1948년 제주 4.3사태, 여순반란사건을 일으킨 배후 조종자이며, 남한에 남로당원 20만 명을 양성해 두었으니 남침만 하면 그들이 일제히 봉기하여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고 적화통일 할 수 있다고 김일성과 스탈린에게 보고해 온 사람이다. 남로당원 ‘20만 명’ 설은 사실이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많았다. 열성당원은 아니어도 동조자를 포함하면 30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좌익들의 계획을 알고 미리 조치한 사건이 ‘숙군’과 보도연맹이다. 숙군은 군내부의 좌익 세력을 척결한 사건이고, 보도연맹은 남로당원의 손발을 묶어두어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하고 공산군이 남침하자 미리 검거하여 많은 사람을 처형시킨 사건을 말한다.
남로당의 첫 번째 반란사건이 제주 4.3사태다. 그리고 그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여수에 있던 국군14연대에게 출동명령을 내렸는데, 14연대는 제주도로 가지 않고 폭동을 일으켰다. 이것이 ‘여순 반란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대구 폭동과 함께 건국을 방해하기 위한 남로당의 무장폭동이었다. 숙군은 여순반란사건이 터지면서 시작됐다. 건국 직후 이런 끔찍한 사건이 터지자 정부에서는 재발을 막기 위해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게 됐고, 전군을 대상으로 좌익분자 색출에 총력을 집중했다.

당시 김태선 시경국장은 수집한 군내 좌익세력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은 이응준 육군참모총장에게 그 보따리를 주며 척결 지시를 내렸다. 육본 정보국, 헌병사령부, 경찰청 사찰과가 총동원되어 좌익 색출에 나섰다. 숙군의 총책임은 백선엽 정보국장에게 부여됐다. 1949년 10월 19일 특무대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되고 방첩대를 육군특무부대(대장 김안일, 육사2기)로 개편하여 숙군에 박차를 가했다. 김창룡은 1951년 5월부터 특무대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수사력은 뛰어났다. 남로당 군사책임자 이재복(李在福)의 비서 겸 연락책인 김영식(金永植)을 체포, 전향시키는데 성공했고, 최희섭 일병을 극좌로 위장시켜 좌익 조직에 침투시켜 남로당의 정보를 수집했다. 군에 침투한 500여 명의 명단을 확보하고 그중 장교가 100여 명 있다는 것에 놀라 그때부터 장군에 대한 숙군을 시작했다. 김창룡은 숙군의 전문가가 됐다. 4차에 걸쳐 군인 1,749명, 군 관련 민간인 526명 등 총 2,300명을 검거함으로써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다. 이는 부화뇌동한 소극적인 경우는 제외시킨 숫자다. 한편 숙군의 태풍이 몰려오자 위험을 느낀 좌익계 지휘관들 중에 부대를 이끌고 월북하는 사례도 있었다. 춘천 지역 8연대 1대대장 표무원(表武源) 중령과 2대대장 강태무(姜太武) 소령이다.
김창룡은 특무대장으로서 무리한 수사도 많았고 저항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숙군 과정을 통해 군의 좌익화를 막고 국가안보를 잘 지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공로로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장군까지 승진했다.

숙군의 모든 정보가 백선엽 정보국장에게 집중되고 있을 때, 박정희 소령이 남로당에 연루되어 헌병대에 수감되었다. 박정희는 영창에서 수사에 협조하기로 결심(전향)하고 수사팀장인 김창룡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백선엽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박정희의 수사책임자였던 정보국 특무과장 김안일 소령은 백선엽 국장에게 박정희를 한번 만나보시기를 건의했다. 백선엽은 사무실에서 박정희를 잠시 만나보고 그의 눈빛에서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생각되어 살려주기로 결심했다. 백선엽, 김창룡, 김안일 3사람이 신원보증에 서명하고 그를 살려주었다. 그가 대한민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어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곧 6.25전쟁이 터졌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박정희는 서울에 남지 않고 국군과 함께 후퇴하는 대열에 함께 했다. 사람들은 박정희가 전향한 것이 확실하구나 믿게 되었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 것이다.

배영복 장로<연동교회>
• 한국예비역기독군인연합회 회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