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피난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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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찬송가는 1908년에 나온 『찬숑가』에 처음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구한말 나라가 일제의 총칼 앞에 멸망해 갈 때, 누군가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가사를 쓴 것이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는 이렇게 나라가 어려울 때 앞장서서 나라를 염려하고 기도하던 호국 종교였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기독교인이었다. 교회는 민족정신을 가르쳤고, 애국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땅한 도리임을 강조하였다. 

일제에 맞서서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순교 당한 사람들은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당시에 다른 종교에서는 순교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기독교에서는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 등 자랑스런 순교자들이 배출되었다.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 찬송가를 금지곡으로 선정하고 이를 교회에서 부르거나 연주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심한 박해를 가했다. 일제 강점기에 이 찬송가가 금지곡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찬송가 <피난처 있으니>의 작곡자에 대하여는 확실한 자료가 없지만, 1740년에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을 1744년에 영국의 시인이요 음악가인 헨리 카레이(Henry Carey, 1687-1743)가 새롭게 가사를 붙여 1745년에 발행된 『음악의 보화』(Thesaurus Musicus)에 처음 수록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745년 9월에 런던의 로열극장(Theatre Royal)에서는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이 멜로디가 피날레 곡으로 연주되었는데, 그 후 어느 공연에나 국왕이 입장할 때마다 이 노래가 연주되었고, 마침내 19세기에 영국의 국가로 인정되어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 

찬송가 <피난처 있으니>의 곡조가 영국국가 <God Save The Queen>(하나님, 우리의 여왕 폐하를 구하소서)과 같다고 하여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멜로디는 본래 16세기 영국의 민요에서 유래한 것이다. 

독립신문의 기사에 의하면 이 곡은 1896년 9월 2일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주관하여 모화관에서 개최된 고종 탄신 45주년 경축 연회에서 기독교인 1천 명이 모여 “우리 황상폐하 천지일월 같이 만수무강”이라는 가사와 함께 불렀다고 한다. 이 곡은 1908년에 발행된 윤치호의 『찬미가』(2판) 1장에도 수록되어 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이 찬송을 애창해야 하겠다. “하나님, 우리나라를 구하소서!”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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