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여는 시의 향기] 모습 2 (창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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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모습을 안고 와서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

그러기에

모습마다엔 다 주인이 있다.

이름을 부른다.

아브라함을 부르면

아브라함의 순종이 떠오르고

모세를 부르면

가시덤불의 불꽃이 연상된다.

한나를 부르면

그의 기도 소리가 간절하고

다윗을 외치면

골리앗도 쓰러지는

모습이 보인다.

오래질 않아도

잠시 머물다가 일어선

자리마다에도

저마다의 모습이 자릴 잡는다.

빈 자리는

빈 공간이 아니라

정녕 저마다의 모습을 담은

그릇들이다.

그 그릇들 속에 새겨진 그리움을 본다.

베들레헴에 가면

아기 예수가 모습으로 누워 계시고

여리고엘 가면

뽕나무 위에 삭개오의 모습이

예수님과 대화를 한다.

따뜻한 모습이

정을 붓고 사랑을 부른다.

갈릴리 호수의 잔잔함 속에

풍랑을 잠재우던 예수님의 그 모습이

물결을 곱게 다듬는 주님의 사랑이

곱게 곱게 얼비추인다.

<시작(詩作) 노트>

모습은 사람들마다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이다. 창세기 1장엘 보면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이 세상의 온갖 피조물들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는 27절, 28절에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겐 그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다. 저마다의 고유한 모습이다. 그 모습들이 저마다의 이름 속에 담겨있다. 이름을 소중히 가꿔야 한다. 모습을 잘 지켜야 한다.  

김순권 목사

<증경총회장•경천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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