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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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에서 상주까지 (35)

낙동 나루터의 흔적을 돌아보면서 까마득한 옛날에 이곳을 방문한 배위량을 생각하면서 감격해 했던 우리 순례단원들은 다음 코스인 낙동면 화산리로 가서 김재수 조사의 생가를 찾기로 했다. 먼저 화산교회를 방문했다. 이 때는 상주 신봉교회 김재수 장로도 같이 동행했다. 김재수 장로는 동명이인이 김재수[김기원] 목사의 생가를 방문한다는 것에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고 배위량 순례단원들과 영남신대 배위량 순례단 학생들도 그 사실에 감격에 겨워했다. 우리는 먼저 상주화산교회(최태기 목사, 상주시 낙동면 화산양지길 124)를 찾아갔다. 화산교회 최태기 목사님은 우리를 보고 이렇게 외진 곳까지 찾아 왔느냐고 하면서 우리를 상당히 경이롭게 여기면서 “사실 김재수 조사의 생가가 화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화산리가 아니라, 신상리이다”라고 알려 주었다. 화산리까지 왔기에 화산교회에서 방문기념 사진을 찍었고 그것을 남겼다. <사진 1 참고>
화산교회 최태기 목사의 안내로 김재수 조사의 생가가 있는 이웃마을인 낙동면 신상리로 갔다. 먼저 낙동면 신상리에 있는 상주신상소망교회(조찬률 목사, 경북 상주시 낙동면 신상2길 54)를 방문했다.
<사진 2 참고>
상주신상소망교회 조찬률 목사님은 멀리서 찾아온 순례객들을 반기며 김재수 조사의 생가를 안내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집 주인이 바뀌었기에, 그 가구주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를 당부하여 우리는 조용히 그 집의 사진만 찍었다. <사진 3 참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고비에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주의 위대한 한 종의 흔적을 더듬으면서 많은 감사함을 느끼며 감격을 느끼는 하루였다. 너무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고 시골집이었지만, 김재수의 생가는 그의 후손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가옥주가 되어 있었지만, 정갈하게 집을 가꾸었고 그 집이 이렇게 유지가 된 것이 너무 참 감사했다. 가옥주에게 피해가 되면 안 되니 조용히 돌아 볼 것을 권하여 순례단원들은 가급적 사진도 찍지 않고 조용히 둘러보았다. 상주 화산교회와 상주신상소망교회의 따뜻한 환대를 받고 김재수 조사의 생가를 둘러 본 순례단원들은 다음 코스인 상주로 출발하였다. “멀리 여기 상주까지 왔으니 상주 사람이 대접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상주로 가는 길에 기어이 김재수 장로님께서 상주의 별미인 소고기 국밥을 순례단원들에게 대접하셨다. 한겨울의 차가운 날씨에 그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의 가치를 크게 느끼며 상주의 별미를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상주에 도착하여 우리는 상주 시장을 둘러보고 상주시민교회와 상주교회를 방문하였다. 상주시민교회와 상주교회는 원래는 하나의 교회였지만, 교회이전 문제로 교회가 둘로 분리된 교회이다. 둘로 분리가 되었지만, 그 아픔을 잘 극복하여 같은 노회 안의 같은 시찰로 남아서 서로 협력하는 한 뿌리를 가진 모범적인 케이스가 된 경우의 두 교회이다. 원래의 교회 장소는 상주시민교회가 가지게 되었고, 원래의 교회 이름인 상주교회란 이름은 상주교회가 가지게 되었다.

/배재욱 교수<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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