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모라토리움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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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토리움은 지체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모라토리(morari)에서 유래된 경제용어이다. 한 국가가 대외적 채무를 감당할 수 없을 때 지불 유예를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지금은 돈이 없어 채무를 갚을 수 없지만 나중에 갚겠다는 것이다. 한 국가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면 파산을 면할 수는 있어도 대외 신용도가 추락하여 해외 투자자들이 떠나가고 은행의 지불 능력이 저하된다. 

심리학에서도 모라토리움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단어는 독일의 심리학자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 1902-1994)이 ‘정체감 위기’라는 이론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하였다. 즉 한 인간이 성인이 되어 정신적, 육체적인 면에서 한 사람의 몫을 감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고 유예하려는 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서 계속 학생으로 남아있거나, 취직할 생각이나 결혼에 대한 의지도 없이 사회적인 혜택을 누리며 안주하려는 상태를 말한다. 

모라토리움 인간형에 속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심한 열등감과 패배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이것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다”라는 불안이 있다. 모라토리움 인간은 항상 어떤 공동체의 방관자로 남아 있으려 한다. 소속감이 없이 떠돌이로 그 공동체가 원하는 의무에서 떨어져서 혜택만을 누리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아닌데”라는 자책 속에서 불안한 심리 상태로 살고 있다. 

요즘 교회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즉 교회는 다니지만 교인으로서의 의무는 지기 싫어하는 모라토리움 교인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저 예배에 출석하여 설교 듣고 헌금은 정한 분량만 내고 교인의 의무를 다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가 필요한 봉사와 직책을 맡기려고 하면 부담을 느끼고 싫어하고 심지어는 교회를 바꾸어 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주일예배 한 번 출석으로 신앙적 죄책감을 상쇄하고,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와 축복은 모두 확보하려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목적은 무엇일까? 

사업 잘되고 병 고치고 좋은 말씀을 듣는 데 관심이 있고, 주님이 지신 십자가에는 가까이 가려하지 않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 신앙생활의 단면을 본다. 의무는 최소화하고 권리와 복은 최대화하려는 병을 치료해야 한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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