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발언대] 남강 이승훈 장로님의 서번트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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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성령 하나님께서 전국장로회연합회에 기대하는 귀한 사명을 바라보면서 남강 이승훈 장로님의 서번트 리더십에 대하여 살펴보며 본을 삼고자 한다.

조선 시대 평북 정주에서 가난한 시골선비의 아들로 태어난 남강 이승훈. 그는 일찍 부모를 잃고 가난했기 때문에 자신의 삶과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열어가야 했다. 고아 이승훈은 놋그릇 유기공장에서 일하면서 자수성가를 하게 되었다. 주인은 이 점원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다 알아서 하니까 내가 더 이상 일을 시킬게 없다 하면서 맡겼고 4년 뒤에는 이 상점의 외교원 겸 수금원이 되었다.

이승훈이 살아온 삶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거부가 되어서 평안도 최고의 재벌이 된다. 급기야 그 시대에 개별적으로 이태리와 외교무역을 할 정도로 엄청난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러나 러일전쟁 즈음에 남강이 파산하게 된다. 무엇을 해도 안 되는 것이었다. 마음이 답답하던 중 어느 날 열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과 민족의 독립을 전했던 도산 안창호의 연설을 듣게 된다. 이 연설을 듣고 남강은 가슴이 설레었다. 그날로 집에 가서 상투를 잘라 단발하고 금주, 금연을 한다.

도산을 통한 예수의 썩어지는 밀알 신앙으로 남강의 삶은 완전히 획기적인 새로운 변화를 맛보게 된다. 남강은 그때부터 자기 재산을 모두 팔아 독립운동과 사람을 키우는데 몽땅 쏟아 넣기 시작한다. 그리고 3년 후에 주기철 목사님이 섬겼던 평양의 산정현교회에서 한석진 목사님의 ‘십자가의 고난’이란 설교를 듣고 완전히 회심하여 장로교에 입교하게 된다.

그리고 1915년 경성감옥에서 가출옥한 후, 52세의 만학도로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년 동안 수학하게 되었고 1916년 장로로 임직하게 된다. 예수복음과 민족독립을 위한 삶에 자기 전부를 투신하고 헌신하게 된다. 남강은 자신의 시신마저도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표본으로 기증할 것을 유언할 만큼 인재를 양육하기 위해서 강명의숙을 세우고 오산학교를 세워 교육에 힘쓴다. 교육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확신한 남강 이승훈은 온 힘과 정성을 오산학교 경영에 쏟았다.

한국의 백병원을 세운 백인제선생(6회), 한국교회의 자랑인 주기철 목사(7회), 민족독립운동에 혁혁한 공을 세운 김홍일 장군(9회), 우리가 잘 아시는 한경직목사(10회), 민족의 위대한 시인 김소월(11회), 함석헌선생(14회), 민족화가 이중섭 화가(17회) 등 그밖에도 수많은 인재들이 남강 밑에서 배출하게 된다. 이는 남강이 예수에게서 받은 밀알신앙, 서번트 리더십 때문이다.

민족 전체의 자리에서 언제나 자신을 비우고 낮추고 버리고 죽을 각오를 하며 섬기는 종으로서 살았던 남강의 삶은 국민 모두가 서로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살아야 하는 민주공화의 시대에 모든 민주시민이 본 받아야 할 리더십이다.

한정호 장로
<강원노회 장로회 회장·춘천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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