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장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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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불안한 가운데도 내 집을 지어야 했다. 그동안 내 친구인 유 총무과장이 신임교수 주택 대여금으로 구해준 대전 대사동의 셋집에서 30여 분 거리의 대학까지 버스로 출·퇴근하고 있었는데 유 과장은 무슨 속셈이었는지 선교부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학교 주변의 오정교회와 학교에 붙어 있는 외국인 학교(KCA: Korean Christian Academy) 사이에 있는 대학부지를 불하받아 대지로 정지해 놓고 나더러 거기에 집을 지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조부 대로부터 본인 집이라고는 소유하고 살지 못했던 가문이었다. 당시 셋집도 학교에서 빌려준 돈을 갚아가야 하는 처지에 있었는데 어떻게 집을 짓는다는 말인가? 그러나 친구는 내가 최초의 구매자기 때문에 어느 곳을 선택해도 되며 주택 대지 대금은 언제든 내가 준비된 대로 갚으면 된다고 했다. 거기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주택은행 대전 지점의 대리로 와 있던 친구가 집을 담보로 융자를 알선해 줄 테니 집을 지어 보라고 부추기는 것이었다. 나는 우연히 외국인 학교의 건축소장으로 학교의 부속 건물과 한남대학 선교사 촌 주변의 건물들을 짓고 있던 분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가 내 집 건축을 맡아줄 테니 집을 지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떠밀리는 느낌으로 얼결에 집을 짓게 되었다. 오 기사는 아주 튼튼한 집 설계를 해 주었는데, 나는 경험이 없어 설계대금도 낸 것 같지 않다. 아무튼, 나는 대학에 인접해 있는 오정교회의 바로 옆에 50평 땅을 측량하여 집을 짓게 되어 1970년 9월에 이주하였다. 내 삶에 이 도움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었다. 

내 집을 짓고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집 현관에 내 이름이 들어간 문패를 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리석으로 내 이름과 아내 이름을 나란히 새겨서 달아 놓았다. 우리 가정에서 문패를 달아보기는 내가 처음이었다. 그 뒤로 우리 집을 찾는 사람은 “아, 그 두 사람 이름을 문패로 달아 놓은 집?” 하고 안내하기도 했다. 6년 뒤 내가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 뒤는 은퇴한 부모님이 와 계셨다. 

1983년에 내가 돌아와 보니 그때 새집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미국의 아파트와 비교할 때 연탄 때고 있는 곳이 후져 보여서 벽을 헐고 리모델링을 하였다. 그러나 5년이 되기 전에 아내는 시내 아파트로 옮겨보자고 했다. 아파트 청약예금도 없어 옮길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내는 미분양 된 집이 있을지 모르니 아파트 섭렵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시내 한복판 시끄러운 마을을 갔었는데 사람들이 소음을 걱정하여 들어오지 않았다고 이층집이 미분양이었다. 그래서 1987년 11월에 옮긴 곳이, 대전 시내 삼성아파트다. 서대전역이 바로 옆에 있는 역세권이었으며 충대병원이 걸어갈 거리에 있었고 아파트 후문을 나가면 그곳이 바로 시장이고 음식점 골목이었다. 이곳이 내가 대학 생활의 전성기를 보낸 곳이 되었다. 교수로 임명되고 교수협의회 회장, 대학원장, 충청수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던 때도 여기 살 때였다. 아내는 베란다에 화초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취미가 지나쳐서 꽃집처럼 꽃이 많았다. 그러나 그곳도 21년이 지나자 파이프가 삭아서 물이 새기도 하고 여기저기 고칠 곳이 많은 아파트가 되었다. 그래서 2007년 12월에 옮긴 곳이 대전시에서 떨어진 외곽에 있는 계룡시의 e-편한 세상 아파트다. 어떤 사람은 “이 편한 아파트가 왜 이리 불편해.” 하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이곳을 좋아한다. 공기가 좋고 거리가 한산하다. 그러나 시청, 보건소, 백화점, 필요한 병원은 다 있다. 코로나 접종도 면사무소(동이 아닌)에서 미리 알선하고 차로 모시러 와서 다 접종이 끝나기까지 기다렸다가 집에까지 데려다준다. 이렇게 한가한 시(市)가 어디 있는가? 우리 부부는 유월절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음식을 먹는 기분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며 이곳에서 살 것이다.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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