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 길] 교회여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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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쓰나미처럼 세상을 휩쓸고 있는 이 시대에, 히말라야 산맥에도 쓰나미가 있다고 한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면서 여기저기에 빙하 호수가 생겨나게 되었다. 산 중턱에 빙하 호수는 황홀하게 아름답지만 일종의 시한폭탄이다. 눈 녹은 물이 계속 유입되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른 둑이 터지면, 쓰나미가 발생하여 아래쪽의 모든 것을 갑자기 쓸어가 버린다. 1년 전에는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 주에서 빙하 호수의 둑이 터지며 쓰나미가 발생하였고 약 200여 명의 사람들이 실종되었다. 지금도 히말라야에는 이런 시한폭탄 같은 빙하 호수가 약 2만개 정도 된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이런저런 쓰나미가 휩쓸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나를 휩쓸어 버릴지 모른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대한민국은 지금 선거 관련 정치 쓰나미와 사람들의 소모적 감정 쓰나미가 휩쓸고 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각은 목양지 교회의 부흥 성장의 꿈을 쓸어가 버린다. 거기에 대해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의 “이제 교회 부흥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들은 부흥에 대해 겨우 붙들고 있는 희망의 불을 완전히 꺼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잠시 10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강제 병합되었을 때 선조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교회들은 민족 자주 독립의 정신을 고취시켜주는 중요한 학습의 장이 되었고, 기꺼이 독립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활동의 장이 되었다. 결코 절망이나 패배감의 쓰나미에 휩쓸려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다시 독립할 수 있었으며, 지금과 같은 선진국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성경에는 유대 나라가 망해가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이야기가 있다. 포로 소년들로서 바벨론 왕궁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전을 얻었지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신앙적 결단을 내린다.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한다.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조용히 내적으로 결단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자신들의 감독관인 환관장에게 그 결단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린다. 자기 정체성의 선언을 한 것이다. 성경은 그런 네 소년들에게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 기로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유럽의 교회들처럼 커다란 예배당에 노인들 몇 분 모여 예배드리고 관광객들만 찾는 구경거리로 전락할 것인가? 초기 교회들처럼 성령과 은혜가 충만하여 복음의 생명력이 넘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뜨거운 교회로 살아날 것인가? 너무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과 악인, 믿음과 불신앙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말씀한다. 교회도 역시 살아있든지? 죽었든지? 두 갈래 뿐이다. 대충 적당히 은근슬쩍 같은 개념은 없다. “교회여 일어나라 주께서 부르시니 두려움과 실패 내려놓고 교회여 일어나라~” 주일마다 성도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이 찬양을 부른다. 반드시  이렇게 될 줄 믿는다. 아멘!

이양재 목사

<명성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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