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상변모주일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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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산상변모기사를 함께 다루고 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와 동행하신 높은 산의 변형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들린 음성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와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이 주는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왜 굳이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셨는가에 대해 주경가들은 예수의 본질적 형체를 보여준 것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의 신비로운 형상을 미리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한다. 얼굴은 해같이 빛나며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던 그 모습은 요한계시록의 모습과 일치한다.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변모산의 모습과 재림하실 예수님의 모습이 동일하다.

베드로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리고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니라”는 구절이 주는 종합적 교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발상은 교회의 무사안일과 현실안주와 상응한다. 우리끼리 이대로가 좋다라는 사고는 성장과 발전에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이 미국 서부개척정신이었고 국가 발전의 에너지였다.

한국교회는 성장 정체의 늪에 빠져 있다. 여기 그대로가 좋사오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일보도 할 수 없다. 포기는 후퇴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후퇴는 재도전이 가능하지만 포기는 주저앉는 것이어서 희망이나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여기도 좋지만 내일을 향한 전진을 포기하면 안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일상이 무너지고, 신앙의 형태가 변형되고 있다. 비대면은 정상이 되고, 대면은 비정상이 되는 역순을 경험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예배신앙이 무너지고 모임공동체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예배를 예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격적 만남과 교제가 불가능한 온라인 시스템은 도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만든 도구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교회는 어떤가? 세상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거룩성을 상실한 채 사람을 위한 축제가 되고,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은 극장 무대화 하고, 사람을 위한 예배로 자리를 바꾸고 있다.

교회는 어떤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이다. 기업도 회사도 아니다 그래서 교회 운영이나 행정은 거룩한 뜻을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세속적 경영 원리를 따르고 있는가를 자성해야 한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 구절이 변모 사건의 핵심 교훈이다. 만일 교회 안에서 예수는 안 보이고 사람만 보인다든지, 복음은 안보이고 과학문명의 잔영이 자리잡는다면 중세교회로 회귀하는 형국이 되고 말 것이다.

크로스비의 찬송처럼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회복이 일어나야 한다.

조직도 단체도 개인도 예수보다 더 크면 안 된다. 그리고 내 모습과 삶의 변화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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