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리더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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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레는 영국의 도보해협을 마주 보고 있는 작은 프랑스 도시이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을 거치면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도시이기도 하다. 깔레는 끝까지 영국군에게 저항하다 구원군이 오지 않아 결국 1347년에 항복을 한다. 이에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깔레 시민을 살려주는 대신 처형할 6명을 요구하였다. 이에 시민들은 누가 희생할 것인지 의논하자 그 도시의 가장 부요한 외스티슈드가 자원했고 뒤이어 시장인 장데르가 나셨고 부자 상인인 피에르가 나서자 그의 아들이 따라나섰고 이에 감격한 시민 3명이 나섰다. 다음날 7명은 목에 밧줄을 매고 영국군에게 가서 처형을 요구하자 에드워드 3세는 1명을 제외시키라 요구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외스티슈드가 다음 날 처형장에 가장 늦게 오는 사람을 제외시키자고 제의하자 모두 동의했는데 다음날 외스티슈드가 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외스티슈드의 집을 찾아가니 그는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 나머지 순교자들의 사기가 죽을 것을 염려한 외스티슈드가 먼저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에 감동한 왕비가 왕에게 자비를 요청했고 임신한 왕비를 고려하여 6명을 살려 주었다. 675년 전 깔레의 여섯 시민이 보여준 용기와 희생정신!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말로 즉 ‘고귀한 신분에 따른 윤리적 의무’를 의미한다. 희생이란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타인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다.

초대 주월남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베트남전 영웅 채명신 장군은 본인 유언에 따라 서울현충원 사병묘역에 묻혔다. 2013년 11월 별세한 채 장군은 오래 전부터 베트남전 전사자들이 안장된 서울현충원의 사병묘역에 묻히길 희망해 왔다. 그의 유언은 “함께 싸웠던 사랑하는 부하들 곁에 묻히고 싶다”였다. 당초 그의 장지는 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이 될 예정이었지만 유가족이 고인의 뜻이라며 사병묘역의 안장을 강력히 요구했다. 장군이 사병묘역에 안장되는 것은 서울현충원 설립 사상 처음이다. 

생을 최우선으로 한 탁월한 국정 운영과 겸손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칭송을 받았던 김황식 전총리, 연평도 전사자 1주기 추모식에서 경호원의 우산을 물리치고 40분간 장대비를 맞으며 젊은 병사들의 희생을 눈물로 추모했던 김 총리는 정치 지도자의 표상을 ‘침묵의 언어’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으며 국민의 신망을 얻었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청렴도와 기업인의 투명성은 아직도 거의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많은 정치인, 교수, 법조인 그리고 종교인 등 지도자들의 자세가 정도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탄식이 그치지 않는 백척간두에 선 혼돈의 이 나라! 이래서야 어디 사회기강이 잡히고, 국가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겠는가? 국치일이 따로 없다. 사회 지도층이나 일반 시민들이 탈법과 비도덕적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국치일이다. 이제 타락한 지도자들을 바로잡아 주는 일은 시민들이 해야 한다. 시민들이 나서서 타락한 지배 계급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책임을 물어, 민주시민 사회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중세 때 유럽 인구를 1/3이나 감소시킨 페스트는 3년 만에 유행은 거의 자연 종식되었으나 그 후유증은 200년 이상이 걸렸다고 역사는 전한다. 코로나 재난이라는 전대미문의 총체적 국가위기 앞에서도 이전투구에 몰골하는 작금의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라.

처칠 경은 “국민들은 자기수준 만큼의 지도자를 뽑는다”고 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3.9대선 시계가 째깍거린다. 이번 대선에서는 불법과 불의한 것을 버리고, 정의로움을 실천하여 국민을 섬기며 나라를 부강케 하는 올바른 정치를 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선택하여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 경제규모 세계10위국의 국격을 드높여 민주주의 선거의 축제장이 되길 소망한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아모스서 5장 24절

조상인 장로 (안동지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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