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단상] 봄의 길목에서

Google+ LinkedIn Katalk +

3월의 봄은 수줍기만 한 처녀의 미소와 같은 계절이라고나 할까? 아직도 쌀쌀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데도 봄빛이 완연하다. 이러한 자연의 신비는 참신한 생명력을 약동케 하고 있다. 

이달 초순 토요일 정오였다. 나는 한가한 주말이라서 오전 내내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창밖에 보이는 나뭇가지는 새봄을 알리는 듯했다. 수피(樹皮)가 한껏 부풀어 오르고 가지마다 꽃망울을 준비하는 활력으로 넘쳐나니 그 생명력의 가치는 정말이지 위대하다. 이것은 신의 창조요, 자연의 이법이다. 그런데도 움츠리고 있는 나의 모습이 마냥 부끄럽게 느껴졌다. 가슴을 활짝 펴고 가뿐한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기 위해 밖으로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 근처 굴포천 강둑을 거닐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삭막하게 보였던 이곳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언제 이렇게 기름기 번지는 어린 새싹들이 땅을 뚫고 일어나는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자연의 이치가 너무 신비로웠다. 참신한 저 생명력,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물큰한 흙냄새, 어쩌면 저리도 내 마음을 사로잡는단 말인가.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어 쭈그리고 앉아 신선한 그들의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신비스러운 봄날의 정경에 흠뻑 젖은 나의 기분을 어느 계절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아늑한 봄의 숨결이다. 

봄은 생명을 약동케 한다. 겨우내 뿌리에서 뿌리로만 흐르던 수액(樹液)이 줄기를 타고 세차게 뽑아 올리는 그 열정이 있기에 잎도 피고 꽃도 핀다. 그뿐이겠는가? 닫혔던 사람의 마음까지 활짝 열게 하는 계절이 바로 봄이 아닌가. 겨우내 쌓이고 쌓여만 갔던 사념의 찌꺼기가 훈훈한 봄바람과 함께 말끔히 씻기어져 마침내 순수한 사랑의 꽃이 핀 것이다. 그러기에 봄철을 가리켜 예로부터 여성의 계절이라고 하고 결혼예식 역시 어느 계절보다 봄철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여간 봄은 생명을 일깨우고, 그리움을 일게 한다. 해마다 봄이 되면 무언지 나도 모르게 부풀어 오르는 마음 하나가 있다. 도무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충족되지 못한 그리움이랄까 나도 모르겠다. 전신에 흐르는 싱그러운 생명감이 마음에 치솟아 가눌 길이 없는 심정일 때면 전신을 봄기운에 다 맡겨 버린다. 그러면 놀랍게도 허전한 마음이 맑게 흐르는 시냇물처럼 자연히 싱그러운 생명감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 신비력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져 경건히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봄바람이 여전히 속삭이듯 나를 야들야들하게 감싸주어 기분을 들뜨게 한다. 이것이 봄날의 유혹이 아닌가. 봄철만이 느껴지는 자연의 유혹,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살찌게 하는가. 만일 그것마저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쓸쓸할까. 생각해 보면 볼수록 봄날의 유혹은 절대자가 준 그윽한 정서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합신)은퇴·수필가·문학평론가>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