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 실록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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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이 되어’ 출간기념…작가의 말을 듣다

지난날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100세로 별세했을 때 청와대와 민주당은 애도 논평 한 줄 내지 않았다. 국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조문하지 않았다. 집권 세력은 그가 일제강점기 20대 초반 나이에 간도특설대에 배치됐다는 이유만으로 ‘친일 반역자’로 몰고 갔다. 백악관과 국무부, 전 주한 미군 사령관들은 모두 애도 성명을 냈다. ‘한국의 조지 워싱턴’ ‘위대한 군사 지도자’라는 최고의 헌사를 바쳤다. 마땅히 우리 정부가 해야 할 말을 외국이 대신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백 장군의 101번째 생일도 유엔사가 대신 챙겨주었다.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이 이 날 처음으로 ‘국군 포로’ 문제를 포함했다. 반면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국군 포로’를 언급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보훈처는 6.25영웅 포스터에 국군 아닌 중공군 모습을 그려 넣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은 6.25 전사자의 유해까지 이벤트 소품처럼 이용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누구의 희생 덕분인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결심이 섰다. ‘백선엽 장군 실록 장편 소설’을 써내기로!
그동안 백선엽 장군에 관한 회고록과 실록 증언, 그리고 ‘징비록’ 등 여러 권 출간되었지만, 지금까지 따로 소설로 쓰인 문학작품(文學作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팩트에 근거한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재미있는, 특히 인간 백선엽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소설(小說)로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백장군이 태어나서부터 육군본부 연병장에서 전역식을 하고 군복을 벗는 것에서 모든 이야기를 대미 (大尾)하였다.
‘하늘의 별이 되어’ 이 소설작품이 지난날, 이 나라 ‘국난의 한 시대에 조국을 어렵사리 구(求)해 낸 참 영웅이 우리 곁에 있었다’라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제2의 6.25와 같은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아픔이 다시는 이 땅에 없어야 되겠다는 참 교훈을 뼈아프게 심어주는 뜻있는 소설이고 싶었다.
특히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 작품을 통해서, 이 시대 진정한 ‘나라 사랑’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필자의 우국충정(憂國衷情)과 같은 작은 소망이 또한 간절했다.
이번 소설작품을 씀에 있어, ‘백선엽’ 하면 지금까지 알려진 팩트(Fact)가 우리 주변에 많이 있어 예상보다는 오히려 소설 같은 소설을 쓰는데 제한이 되어 더 어려움이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6.25 한국전쟁 회고록 ‘軍과 나’에서 저자 백선엽 장군은 분명 우리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6.25 진상을 제대로 모르는 이 땅의 젊은 학생들과 많은 사람들은 순전히 관념적인 이데올로기 유희에 도취되어, 동족상잔의 원흉인 김일성을 민족의 영웅으로 예찬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는 공산 남침을 북침이라고까지 떠들어대고 있는 작태(作態)를 보는 내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백선엽은 그것은 6.25의 진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까닭이라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일생을 조국 수호에 헌신해 온 군장성(將星)으로, ‘軍과 나’라는 회고록을 출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군에서 백선엽 장군을 직접, 오랜 기간에 모시고 있었던 경희대 교수, 김점곤 장군은 이 책 ‘말미에 부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백장군은 청소년 시절을 빈곤과 고난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 속에서 제2의 천성이 된 성실, 소박, 근면, 검소한 인품과 생활태도, 그리고 애국심 등을 줄곧 지켜보면서 나는 평생 그를 존경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는 항상 지나치리만치 자신에게 엄격했다. 그러나 친구와 부하에게는 군인답지 않으리만치 관대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선의 노력, 그 대가로서의 성과를 늘 신봉하고 있었다.
그의 성공에는 비결이 따로 없었다. 다만 천부의 총명과 예지를 갖추고, 겸양과 정직, 성실로 일관한 결과가 바로 그가 6.25전쟁에서 이룬 위업의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백선엽 장군이 예편 후, 그와 가장 많이 인터뷰하고 함께 회고록 등 6.25전쟁 ‘징비록’을 출간한, 중앙일보 유광종 작가는 그의 저서 ‘백선엽을 말한다’에서 또 이렇게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는 70여 년 전 벌어진 한반도의 격렬한 전장(戰場)에서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적을 물리치고 수많은 승리를 이뤄냈다. 그는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싸움꾼, 명장(名將), 그리고 탁월한 승부사(勝負士)였다”라고 주장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3년 1개월 동안 벌어진 이 전쟁에서 우리 국군 지휘관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전과를 기록한 이가 바로 백선엽 장군이었다. 이는 당시 전쟁을 함께 수행했던 미군(美軍) 이 모두 인정하는 내용이다. ‘가장 뛰어난 야전군 지휘관’이라는 명예를 안긴 쪽도 바로 미군이었다.
또한 우리 한국군에 미국의 ROTC 제도를 처음 도입한 장본인도 백선엽 장군이었다. 그 결과 지금 이 나라에는 23만의 ROTCian 엘리트 예비역 집단이 형성되어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조 국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4~6천 명의 신임 초급 장교들이 전국 남녀 각 대학에서 배출되고 있다. 이중 약 73%인 그들이 우리나라 최전방 155마일 전선을 오늘도 굳세게 지키고 있다. 이 모두가 누구의 은공인가?
이와 같이 한국군의 전력을 정상으로 증강시키고, 6.25전쟁에서 몰락하는 나라를 구출한 국가적 영웅을 ‘친일(親日)’의 족쇄로 채워, 지금까지 폄훼하고 있는, 일부 진보 좌파 정치적 모리 배들이 아직도 이 땅에서 활개를 치고 있음은 정말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백선엽 장군의 전과(戰果)보다는 일제 치하의 만주군 경력을 트집 잡아 사정없이 폄하하고 욕보이고 있다. 심지어 대전 현충원의 시신에 대한 파묘(破墓)까지 운운하고 있는 냉혈적 인 그들이다.
이는 오해(誤解)라기보다 말도 안되는 곡해(曲解)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증언은 아예 무시하고 제 정치적 견해에 맞춰 사실과 증언을 비틀어 고의로, 엄연한 역사를 잘못 읽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불순한 의도가 너무나 노골적이다.
6.25전쟁에 있어 한반도를 동족상잔의 피바람으로 몰아넣었던 김일성과는 전선의 숙적이 됨으로 만나, 마침내 그의 예봉을 백선엽이 꺾었다. 김일성의 이어지는 적화 야욕은 백선엽이 발 빠르게 펼친 ‘국군의 전력 증강’ 사업으로 그때마다 그 야욕의 길을 막았다.
70여 년 전 벌어진 이 땅 위의 전쟁에서 백선엽의 이름은 늘 이렇게 크게 떠올랐다. 전쟁의 중요한 흐름, 국면이 바뀌는 전투에서 승리할 때마다, 백선엽이 신기하게 느끼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때는 처한 상황이 전적으로 아군이 도저히 승리할 수 없는 불리한 국면에서도, 용케도 승리를 하게 되는 기적(奇蹟)과 같은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특히 ‘다부동 전투’에서 너무나 다급한 상황에 몰렸을 때 백선엽은 크게 절망되는 순간,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는 가운데 이런 기적들이 자주 일어났다.
이럴 때마다 백선엽은 어머니의 간절한 새벽 기도의 힘이려니,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면서 백선엽은 6.25전장에서 일어난 많은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내 자신을 들어 쓰시고 계심을 깨달았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똑똑해서가 아니고 모두 하나님이 ‘내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셔서 자신을 통해 섭리하시고, 경영하셨다는 믿음의 신앙(信仰)이 마음속 깊이 싹트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백선엽은 자신도 모르는 새, 벌써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신앙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필자는 백선엽 장군이 ‘다부동 전투’ 그 현장에서 하나님께 서원(誓願)했던 그 약속들을 후일, 어김없이 지켜가던 아름다운 모습들을 최근에 와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백선엽 장군이 예편하고 영락교회(원로 한경직 목사, 당회장 박조준 목사)에 출석해 서리 집사로 임직할 때 담당했던 지금의 신촌교회 오창학 원로목사(당시 영락교회 수석부목사)님으로부터 상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오창학 목사님이 그 당시 영락교회 용산교구장으로서, 백선엽 장군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 심방 가서 함께 예배드렸던 사실도 자세히 들었다. 그러면서 오 목사님을 통해 백선엽 장군의 그 당시, 믿음생활과 예편 후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또 매주 만나는 예배 집회에서 이정린 장로(전 국방차관)님과 5사단장 출신으로 백장군과 평소 교류가 깊었던 이석복 장군(예 소장, 육사21기)님과 송영근 장군(예 중장, 육사27)님의 증언들도 이번 집필에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중앙일보에 백선엽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내가 겪은 6.25와 대한민국’ 제하의 실록 회고록을 장기간 연재했던 유광종 기자님과, 말년까지 백선엽 장군을 직접 보좌했던 이왕우(예 대령, 육사37기)님과도 그동안 자주 만나, 지난 날 백 장군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들을 수 있는 행운도 있었다.
또한 백선엽 장군이 소천하자, 그 추도예배를 R기연(ROTC기독장교연합회, 회장 한규성 장로)에서 맡아 정기적으로 집례(양성전 목사)하며, 이때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백선엽 추모기념사업회’를 창립해,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이 모임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필자를 백선엽 장군 전기 작가(傳記作家)로 임명하고 ‘하늘의 별이 되어’ 이 소설 작품을 쓸 수 있도록 사명자(使命者)로 명명해 준 ‘백선엽 장군 기념사업회’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 소설작품이 출간하기까지 저를 도우신 삽화의 최경제 화백님과 ㈜자유방송 박세란 대표님과 교음사 강병욱 대표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1952년 경기도 광릉의 한국 수도사단을 찾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자와 이승만 대통령, 백선엽 장군(맨 오른쪽)

작가 채수정 장로(본명: 채학철, 전농주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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