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 길] 목양자의 반성문 <2>

Google+ LinkedIn Katalk +

신앙생활은 독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도 독점하고, 성경도 독점하고, 성전도 독점하고, 구원도 독점하고, 예배도, 의식도 독점하고, 메시아도 독점하려 했습니다. 타인을 향해 배려하지 못하며 저들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는 기도를 올리는 독선에 빠졌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온갖 좋은 것을 독점하고 누리며 이웃을 향하여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 서지 못하는 일면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교회우상주의는 심판을 받아야 마땅했습니다. 메시아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여야 한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잘못된 바리새적 교회 우상주의를 심판하신 것이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말씀의 권위가 떠나면 교회 우상주의에 빠지고, 타락하고,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1517년에 종교 개혁에 직면하고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있다고 소리치며, 개혁교회가 탄생했습니다. 

한국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말씀과 은혜의 자리’를 떠나면 망하고 맙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예배와 십일조와 제사 행위를 받지 않겠다. 누가 저 성전 문을 걸어 잠그면 좋겠다. 나는 너희가 드리는 제사에 신물이 난다. 지긋지긋 하다.” 이미 성전 우상 주의에 빠진 자들이 드리는 제사에 관심이 없으신 하나님은 그 성전에 계시기를 포기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없는 교회에서 예배하고 있지 않나 세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만이 교회 안에서 경험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교회 안에서 그 어떤 차별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져주심을 경험하는 공동체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개명될 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의 이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야곱이 이겨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져주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이깁니까? 하나님은 항상 져주십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듯이, 사랑하면 집니다. 목양자는 교인과 교회에 백 번 싸우면 백 번 집니다. 우리가 왜 ‘복 있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져주시는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가 그것을 대변해 주십니다. 

한국 교회는 기득권 싸움으로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내려놓지 못하고, 양보하지 못하고, 왜 유독 그 교회는 그 목사 여야만 합니까?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께서, 거기까지, 그날까지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져줍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 녹여내는 인내의 사랑을 경험하는 목양자가 되는 것이 저의 목회 철학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예수 바보’가 되어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길 소망해 봅니다. 

김태승 목사

<은성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