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년이 교회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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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주일을 맞았다. 기독교는 청년의 종교다. 예수님의 30대(30~33세) 공생애 사역이 인류 역사를 바꿔 놓았고, 지금도 우일신(又日新)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孔子)는 30대 입지(立志), 40대 불혹(不惑), 50대 지천명(知天命)으로 단계화했지만, 청년 요셉, 청년 기드온, 청년 다니엘의 리더십은 우리 기독교의 자랑이요 전통이다. 

이처럼 기독교는 항상 청년답다. 신체 연령이 몇 살인지는 상관없다. 그의 정신과 활동이 독야청청하면 곧 청년인 것이다. 성경에도 “젊은이여,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네 마음과 눈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 다만 네가 하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라/ 네 마음의 걱정과 육체의 고통을 없애라. 혈기왕성한 청년은 덧없이 지나가기 때문이다”(전 11:9-10/ Boys, be ambitious in Christ!)라고 말한다. 결국 인생의 결론은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의 의무(本分)”(전 12:13)라는 결론이다. 

“아무도 그대가 젊다고 하여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도리어 그대는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 있어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딤전 4:2/ Don’t let anyone put you down because you’re young). 이어서 청년을 예찬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성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었을 때 늙어가나니…”(사무엘 울만/ 청춘).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의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과 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理性)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智惠)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라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쌓인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봄바람,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피고 새우는 봄날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민태원/ 청춘예찬). 

이제 청춘답기 위해 세월을 아껴쓰자(엡 5:16-17). 왜냐하면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촌음의 시간인들 가벼이 여길소냐/ 연못가 잔디가 봄꿈을 깨기도 전에/ 계단 밑 오동잎은 가을을 알려온다”(少年易老學難成/一寸光陰不可輕/未覺池塘春草夢/階前梧葉已秋聲/주자의 권학시). “일생에 청년은 다시 없고/ 하루에 새벽도 두 번 없다/ 그러니 제때 제때에 최선을 다하여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盛年不重來/一日難再晨/及時當勉勵/歲月不待人/도연명). 

달력의 나이는 상관없다. 교회도 목회도 더욱 젊어지자. 청년들이 교회의 주변인이 아니라 중심축에서 일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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