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하기 공수훈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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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마치지 못하면 졸업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걱정도 되었었다. 그런 어려운 중에 훈련을 8등으로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4년 동안 1등의 성적을 놓치지 않고 버텨냈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는 반드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심을 깨달았다.

훈련을 마치고 난 후에도 나는 그 감사함을 잊을 수 없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삼각산 기도처를 찾곤 했다. 아들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부임해서 교수 생활을 했으며 지금은 회사의 사장으로 그리고 두 아들을 둔 가장으로 지내고 있다.

가끔 기운 없이 아파하는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릴 때면, 예전 그때 생각이 문득 떠올라 마음이 시리다. 나의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무릎의 기도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할머니!

첫 손녀가 태어나던 날! 할머니가 되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할머니! 축하합니다’ 라며 말을 건넨다. 젊는 나이에 할머니가 되어서인지 할머니 소리가 어색하기만 하더니 손녀가 자라면서 말을 배워 ‘함니! ’하는 소리는 얼마나 귀엽던지!

큰아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귀여운 손녀가 보고 싶어 눈물로 지내고 있었다. 지켜보던 남편이 손녀 보러 다녀오라고 권해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은 초행이라 시애틀 공항에 도착하니 공항이 크기도 하고 복잡해서 짐찾는 곳도 찾기가 어려웠다. 방송은 나오는데 hearing이 안 되니 할 수 없이 함께 탑승했던 사람들 뒤를 따라 한참을 가다가 위를 쳐다보니 큰아들이 2층 유리창 밖에서 난초 꽃을 들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보는 순간 얼마나 반갑고 안심이 되었던지….

새벽 5시에 떠나서 7시간 운전을 하고 왔다고 한다. 몇 달 만에 아들과의 만남인데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집에 도착하자 손녀가 뛰어나와 할머니! 하는데 눈물이 나도록 반가웠다. 밤새도록 잠자는 혜종이를 안아도 주며, 온몸을 어루만져주기도 하면서 한밤을 지새웠다. 함께 여행도 하면서 손녀와 함께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큰 며느리의 해산이 한 달 남았기 때문에 도와주면서 손녀와 함께 몇 달 더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한국의 식구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가슴이 너무도 아팠다.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하기 전 혜종이를 안고 얼마나 울었던지! 탑승한 후 기내에서도 계속 흐르는 눈물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처음으로 미국여행! 아마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첫 번째 손녀! 처음 주었던 사랑! 그래서 그리워했던 것이 아닌가! 4남매 가정에서 해마다 손주들이 태어나서 손주가 10명이 되었다. 태어날 때마다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다. 자식은 내리사랑이라고 하더니 손주들도 매한가지인 것 같다. 손주들이 모두가 대견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할머니는 그래서 행복한 것 같다. 사랑하는 나의 손주들! 모두 모두 고맙고 사랑한다.

함명숙 권사

<남가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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