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하나님을 표현하는 유비적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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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문명과 거리가 먼 아마존 정글 속에서 벌거벗고 사는 원주민들도 언어를 사용해 의사를 소통한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로는 지구상에는 적어도 7천 종류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인간의 두뇌 속에 언어의 DNA를 입력해 주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요 은총의 선물이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 눈부시게 황홀한 경치를 보고 ‘필설로 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언어의 한계를 잘 드러낸다.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 하나님에 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인간의 제한된 두뇌 지능으로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다 인지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본체를 다 인식할 수도 없다. 인간의 제한된 인지 기능과 제한된 언어로서 하나님을 제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할 수 없이 인간의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관계’의 유비적 언어(analogical language)로서 하나님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아버지란 말인가? 육신의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를 유비해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은 나의 생명을 주신 분이요,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호세아, 이사야, 에스겔 같은 예언자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 부부의 관계로 표현했다. “너를 지으신 이(=창조주 하나님)가 네 ‘남편’이시라.” (사 54: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렘 3:14) “내가(=하나님) 네게(=이스라엘)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호 3:19)

또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도 표현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 100:3)

또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로도 표현했다. “나는 주의 종이오니 깨닫게 하소서.” (시 119:125) “여호와여 주의 종들을(=이스라엘 백성) 긍휼히 여기소서.” (시 90:13)

이사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포도원 주인과 포도나무로 유비하기도 했다. (이사야 5장)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5:1-2) 유명한 ‘포도원의 노래’는 해석이 뒤따른다.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포도)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5:7) 포도원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유다 백성을 의미) 그들이 좋은 열매 맺기를 기대했으나, 실망스럽게도 들포도를 맺었다는 것이다. 이는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책망의 말씀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자주 왕이라고 지칭하는데 이것 역시 유비적인 표현이다. 한 나라에서 가장 높은 존재는 왕이요,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처럼 하나님은 ‘천상의 왕’(Heavenly King)으로서 만물을 통치하신다는 뜻이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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