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상대성 원리와 부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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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트리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여 14년간 언론사에서 법률 전문 기자로 일하며 언론인상을 수상한 바 있는 리 스트로벨은 그의 저서 <예수는 역사다>에서 예수의 부활이 실제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방증(supporting evidence)’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직접적이지는 아니더라도 관련된 사실에 근거를 둔 정황증거는 분명한 거짓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1980년대에 들어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이 허구임을 증명하기 위해 거의 2년에 걸쳐 부활의 신빙성에 대해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과 오랜 기간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조사를 마친 후 스트로벨은 드디어 항복 선언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가 조사한 측면은 신약성서 사본의 신뢰성과 부활 여부의 확실성이었다. 신뢰성에 관해 그가 발견한 것은, 성서는 서구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다른 고전들에 비해 진본과 사본 사이의 시간 간격이 100년도 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한편 주전 8세기 호머가 쓴 ‘일리어드’는 약 3세기 경 고대 로마시대에 쓰인 것으로 진본과는 1,100년 정도의 시차가 있었는데 성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주장한 이들이 몸소 기록한 바이므로 100년 동안 변질될 개연성은 매우 낮다고 본 것이다.

또한 부활 여부의 확실성에 대해서는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집단 환각’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집단 환각은 각 개인에게 발생하는 정신현상으로 타인과의 공유가 불가하므로 그것은 예수의 부활보다 더 큰 기적이라고 단언했다.

부활이 직접 목격한 사실이 아니었다면, 이 증언에 대한 초대 기독교인들의 순도 높은 신앙은 어디에서 나온 현상일까? 부활의 목격자 500명은 순교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들의 증언을 단한 명도 번복하지 않았다. 또한 부활의 최초 목격자가 여성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성 중심의 유대 사회에서는 여성의 증언이 공식적인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최초 목격자로 제시한것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으로 이는 부활에 대한 증언의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제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이용하여 설명해 보려고 한다. 이 원리를 믿는다면 지금도 살아계시는 주님,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확신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매우 난해하므로 본 지면에서는 알기 쉽게 한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빛의 속도는 초당 30만km인데 이 속도는 관찰자의 여건(예: 지금 이동 중)에 관계없이 늘 초당 30만km로 일정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관찰자가 매초 1km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타고 빛이 가는 방향으로 가더라도 빛의 속도는 여전히 초당 30만km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아인슈타인은 ‘광속 불변의 원리’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실
에 동의하면 이동하는 자에게 시간과 공간은 줄어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970년 4월 11일, 미국에서 인공위성 아폴로 13을 발사했던 당시, 타임지는 기사에서 이들 인공위성 탑승자들이 지구상의 사람들보다 100만 분의 3초가 젊어졌다고 보도했다. 즉, 그들의 시계가 지구상의 시계보다 그만큼 느리게 갔다는 뜻이다. 만일 아폴로13이 거의 빛의 속도로 지구 주위를 회전했다면 그들의 시계는 거의 멈춘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광속 불변의 원리’를 정당화하려면 공간도 줄어든다고 보아야 한다. 시간이 더디 가고 공간도 줄면 시간당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이론
이 성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유형과 무형의 상호공존이 가능하다는 예를 소개하겠다. 초를 밝히면 초는 녹아 기체로 변한다. 즉, 유형의 상태가 무형의 상태로 변하는 현상이다. 한편 식물은 수분과 햇빛을 이용하여 엽록소를 만들어 낸다. 앞의 예는 유형이 무형으로 전환하는 예이고 후자는 무형이 유형으로 바뀌는 예이다.

위의 예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원용하면 믿는 우리에게 매우 풍성한 은혜를 과학적으로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부활은 유형에서 무형으로의 변신을 의미하며, 예수님이 믿는 자의 마음에 언제나(시간초월) 변함없이 임재(공간초월) 하심을 더욱 분명히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형재 장로
<신장위교회,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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