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대한민국 탄생과정의 ‘기독교적 건국론’을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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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기나긴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은 것을 기념하는 뜻 깊은 날이다. 8·15는 동아시아 현대사의 기점이다. 식민지 지배나 침략에 시달린 여러 민족들에게는 해방과 독립을 가져다준 경축일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상해 임시 정부를 계승한 정통성을 지닌 정부요, 이승만과 한경직 등 건국의 주역들이 현명한 선택의 결과로, 공산화를 막고 지금의 자유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다. 

이승만은 불과 23세 젊은 나이에 감옥생활을 하게 되면서 옥중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믿는 날부터 옥중 동료들에게 열심히 전도하여 40여 명을 기독교에 입신케 하였다. 그리고는 옥중 학교를 열어 함께 공부하였다. 그는 그에게 감동을 받은 교도관들의 도움으로 많은 책들을 구하여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논설을 써서 감옥 밖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가 옥중에서 쓴 글들의 주제를 이정식 교수는 「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이란 책에서 말하기를 ‘기독교로 나라 세우기’라 평하였다. ‘기독교로 나라 세우기’는 다른 말로 ‘기독교 건국론’이라 할 수 있다. 이승만은 당시의 조선 상황을 논에 물이 마르고 뜨거워 고기가 살 수 없는 상황이어서 물고기가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물을 찾아가야 하며, 새 물줄기는 바로 기독교라 하였다.

이런 이승만 대통령과 한경직 목사의 건국에 대한 같은 생각과 공감대는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1945년 12월 공산주의의 박해를 피해 월남한 27명의 성도들이 모여 창립예배를 드린 베다니 전도교회의 한 목사가 해방 후 3년간 건국을 위해 주창했던 내용을 1949년 서울 보린원에서 출간하였다. 저서 「건국과 기독교」는 초기 대한민국의 정신적 기초를 형성하는데 기여하며 때로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일제에서 해방된 한반도에 어떤 형태의 국가가 세워져야 하는지에 대하여 열정적 설교로 방향을 제시하였고, 그를 따르는 이들은 ‘정치참여’로 그의 주장에 동조하며 공산화를 막고 자유 민주주의 나라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한 목사는 기본적으로 정치와 종교는 서로 별도의 영역에서 분리해 존재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을 폈다. 과거 역사 속에서 정치와 종교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 적지 않은 폐해가 속출했음을 상기시킨다. 그렇다 해서 기독교인의 국가를 위한 개인적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오히려 각계 기독인은 적극적으로 국가를 위한 정치에 참여해야 할 것을 권하였다.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위해 전 국민이 노력하고자 할 때, 마땅히 기독교인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적극 권면하고 있다. 한 목사는 현실정치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기독인이 새 나라를 건설하는 주역이 되어야 하며, 그러한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희망이요 기대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내보이고 있다.

한 목사의 삶은 대한민국의 근대사만큼이나 희로애락으로 점철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서「기독교와 건국론」을 통하여 한 목사의 신앙, 철학, 그리고 삶의 족적은 그의 주변인들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형성과 그 전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으로 남겨졌다는 점이다. 공산화를 막고 오늘의 자유대한민국 탄생과정에 있어서 한 목사의 ‘기독교적 건국’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실천적 삶이라는 발자취 앞에 그것의 실천이라는 빚을 지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분열된 에큐메니컬(Ecumenical) 정신을 다시 회복해 새로운 연합운동을 전개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효상 목사 (다산문화예술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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