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339) 알브레히트 뒤러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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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신의 뒤를 잇는 제2의 창조자이다”

작품은 정신적 초상, 한 편의 예술가의 자화상

자연스럽게 서 있는 콘트라포스토가 설득력 있게 그려진 것도 독일에서는 처음이다. 뒤러는 여기서 다리는 키의 1/2, 얼굴은 1/10 등 인체의 비례로 그렸다. 그는 이상화된 비례를 가지면서도 자연스럽고 순수하며 관능적인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수식이 아니라 사람이 보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은 자와 컴퍼스(compass)를 사용해 만들었다. 

그의 양식화된 자화상에서 인간은 기하학과 미를 통해 그 가치가 상승된다. 이러한 자의식은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화가는 신의 뒤를 잇는 제2의 창조자이다.” 뒤러는 후배 화가들이 이 연구를 이어가도록 측정술과 인체비례에 대한 저서를 독일 산문으로 저술, 출판하기도 했다. 

1512년 뒤러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궁정화가가 되어 황제의 초상화와 192개의 판목으로 구성된 <막시밀리안의 개선문> 제작을 총괄했다. 그 공로로 1515년부터 황제의 연금을 받았다. 뒤러를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라는 ‘검은 선의 아펠레스’로 부르며 색채를 능가하는 선의 표현력을 발휘했다. 그 명성을 얻게 한 주인공은 1513-1514년 사이에 제작한 세 점의 걸작 동판화(Master Engravings)인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 <멜랑콜리아 1>이다. A4 용지보다 작은 화면을 뒤러의 창의력과 완벽한 기술, 풍부한 지식으로 정밀하게 채운 이 작품들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다양한 연구들이 수행되었다. 상충하는 해석도 많다. 그래서 정확한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세 작품을 연관시켜 보면 이들은 기독교인이 구원에 이르는 세 가지 방법, 즉 기사는 도덕적 방법, 히에로니무스는 신학적 방법, 멜랑콜리아는 지적인 방법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멜랑콜리아 1>은 뒤러의 탁월한 기술과 교양을 상징화한 것으로 수수께끼 같은 상징적 기물들로 가득 차 있다. 건축과 목공에 연관된 사물들은 모두 수학과 밀접한데 수학적 질서를 재료에 부여하면 어떠한 도구나 건물이 만들어지듯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창조적인 예술가의 활동을 형상화한다. 

<멜랑코리아 1>은 중세의학에서 인간의 체질을 다혈질, 점액질, 담즙질, 우울질 넷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우울질은 건조하고 차가우며 인생에서는 쇠약해진 노년기와 같고, 손으로 턱을 고인 채 게으름뱅이나 광인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이 우울질이 15세기 후반부터 달리 해석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마르실리오 피치노(Marcilio Ficino)는 창조적 상상력을 가진 천재의 특성이므로 우울은 예술가의 창조적 능력과 관계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멜랑콜리아 1>의 인물은 세계의 법칙과 질서를 과학적으로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예술가의 초상이자 알레고리 상(像)이다. 우주의 질서와 미의 법칙에 이를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추구하기에 깊은 좌절에 빠져있다. 이런 면에서 작품은 뒤러의 정신적인 초상이며 한 편으로는 예술가라는 존재의 일반적인 자화상이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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