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빈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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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나룻배를 타고 강에서 명상에 잠긴 장자(莊子). 여느 때처럼 눈을 감고 배 위에 앉아 명상을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어떤 배가 다가와서 그의 배와 부딪쳤다. 화가 치민 장자(莊子)는 “무례한 인간이군. 내가 눈을 감고 명상 중인데 어찌하여 내 배에 일부러 부딪친단 말인가” 하고 눈을 부릅뜨며 부딪쳐 온 배를 향해 소리를 쳤다. 그러나 그 배는 비어 있었다. 아무도 타지 않은 빈 배였다. 강물 따라 흘러내려 온 빈 배였다. 순간 부끄러움을 느낀 장자(莊子)는 제자들을 이렇게 가르쳤다.

​​“세상에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만일 그 배가 비어 있다면 누구도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내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나와 다투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내게 상처 입히려 들지 않을 것이다. 내 배가 비어 있는 데도 화를 낸다면 그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내 배가 비어 있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화내는 것을 즐길 수가 있다. 텅 빈 공간이 되어라. 그리고 사람들이 지나가게 하라”

일련의 접촉행동을 위해서 모든 유기체는 에너지를 동원, 감각기관과 운동기관에 투여함으로써 목표물에 접근할 수 있고, 마침내 이를 받아들이고 동화시킨다. 펄스(Laura Perls)는 이때 사용되는 유기체의 에너지를 ‘흥분’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생명체를 움직이는 활성에너지다. 하지만 생명체는 흥분에너지를 바로 행동으로 바꾸지 않는다. 우선 처한 환경과 상황을 감각을 통하여 판단하고, 판단결과에 따라 활성에너지를 투입해 행동하게 된다. 펄스는 이러한 상황 판단에 따라 변형된 흥분에너지가 감정이라고 했다. 감정의 체험은 우리의 욕구와 그 대상에 대해 중요한 정보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가 나는 상황에 대해서 같이 화로 대응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환경에 다가가는 행동을 할 때뿐만 아니라 환경 속의 새로움을 만나고 이를 동화시키는 과정에서도 감각과 감정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은 감각을 통해 지각(知覺)하고 감정을 통해서 환경과 접촉한다. 감각과 감정은 알아차림과 접촉을 유발한다. 알아차림은 유기체의 흥분 에너지를 지각하는 것이고, 접촉은 흥분 에너지를 받아들여 반응하는 행위이다. 문제는 사람의 감정이 변동 폭이 심하다는 데 있다. 어떤 때는 구름 위 하늘로 치솟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특히 바닥을 칠 때는 감각을 무시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감정에 휘둘린 섣부른 판단과 선택은 자신의 삶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인생,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행복을 누리게 된다.

우리는 헝그리(배고픔) 시대에서 앵그리(화냄) 시대로 변해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적당히 화를 내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만, 과도한 화는 상대방과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 화가 났을 때에도 화로 대응하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 장자의 말처럼 사람다운 행동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빈 배’로 만들어야 하지만, 예수님은 빈 배를 만든 후 사랑으로 채우라 말씀하신다. 빈 배를 그대로 두면 사탄의 작란(作亂)으로 더 큰 죄악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비움을 강조하지만, 기독교는 채움을 강조한다. 복음으로 채워진 마음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 12:43-45)

고영표 장로 (의정부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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