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신앙을 보는 눈이 바뀌어 간 이승만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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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성감옥에서 예수를 만난 이후 신앙관 – 신앙은 서양의 것, 문명도 서양의 것

이승만의 신앙관은 배재학당 입학 전후로 바뀌었다. 배재학당 입학 전에는 신앙도 동양의 것, 문명도 동양의 것이었다. 배재학당에 들어간 친구들이 학교에서 들은 ‘전보, 기차, 비행기’ 등을 자랑했을 때, 이승만은 그러한 문명이 ‘천상천하의 질서를 마음대로 바꿀 수는 있어도 나는 내 어머니의 종교를 절대 버리지 못한다’고 했다. 동양의 종교를 고수한 그는 서양문명의 위력 앞에 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배재학당 입학 후 참석한 예배에서 들은 일천구백 년 전 죽은 예수가 나를 위해 죽은 것이라는 설교는 너무도 황당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종교는 그대로 동양의 것으로 하고 문명만 서양의 것으로 취한다는 동도서기의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러던 이승만이 이제 신앙도 문명도 다 서양의 것을 받아들이게 된 획기적 사건이 있었다. 즉 이승만이 ‘서도서기’의 신앙관을 취한 것은 바로 한성감옥에서 예수를 만나고 나서였다. 이제 이승만은 서양문명이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신앙이 근원적임을 알았다. 선교사를 그저 문명 전파자의 앞잡이 정도로 좋지 않게 생각하던 이승만이 선교사가 자기들이 알고 있는 좋은 도, 즉 신앙을 혼자만 알기 아까워서 목숨 걸고 이를 전해주러 온 사람들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제 이승만에게 기독교 신앙, 기독교 복음은 한국이 살 유일한 길이 되었다. “대한 사람들의 새 물줄기는 예수교회이다.”

2. 크리스천 이승만이 가진 신앙관의 탁월성

지금까지 우리는 이승만의 신앙관이 ‘동도동기’에서 ‘동도서기’로 다시 ‘서도서기’로 변화해간 것을 살펴보았다. 이중에서 서로 통하는 두 가지는 무엇일까? 바로 ‘동도동기’와 ‘서도서기’이다. 이 둘은 구조적으로 통한다. 즉 신앙(도)과 문명(기)은 일치하게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동도서기’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신앙과 문명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 중 무엇이 옳은가.

성경을 보면 해답이 있다. 성경은 사람을 움직이는 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람은 영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에게 이끌린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성령에게 이끌린다. 사람을 끄는 영이 그 사람의 언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속에 있는 영과 그 바깥에 드러나는 언행은 일맥상통한다. 예수님 말씀에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 알 수 있다는 말씀이 여기 해당한다. 좋은 열매는 나무가 좋기 때문이다.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열리게 되어 있다. 무화과나무가 엉겅퀴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에 있는 것이 그대로 밖으로 연장되게 되어 있다. 

이렇듯 신앙과 그 산물인 문명은 서로 일치하게 되어 있다. 서양문명은 기독교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신앙은 그대로 동양의 것을 고수하면서 서양문명만을 취하고자 하는 것은 신앙과 문명의 구조적 일치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류금주 목사

<전 서울장신 교수·현 청교도신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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