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343) 알브레히트 뒤러 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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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네 사도’ 루터 신학적 견해 반영

청년부터 노인까지 인간의 다양한 성격 표현

뒤러는 새로운 종교적 변화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가톨릭의 전통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것은 뒤러의 직업이 화가였고, 여전히 그의 작품의 주제는 종교적이었고 큰 고객인 가톨릭을 버리지 못했다. 뒤러는 최초로 루터를 인정한 뉘른베르크에 살았으나 당시 제후들이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못했다.

뒤러는 인문주의자들의 모임에 속했으며, 그들을 통해 루터의 교리와 종교개혁을 접했다. 그는 루터의 반박문과 팸플릿을 읽은 것으로 보이며, 루터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편지나 일기에 드러냈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그가 제작한 작품인 ‘최후의 만찬’, ‘네 사도’는 루터의 신학적인 견해가 반영되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상을 부정했다. 가톨릭을 중심으로 발달한 종교 미술을 쇠퇴하게 했다. 그래서 독일의 화가들은 일거리를 찾으려고 고국을 떠나기도 했다. 뒤러는 뉘른베르크 시가 루터주의를 공식 수용하기로 한 1525년 다음해에 그가 시에 기증한 ‘네 사도’로 그의 신앙적 입장을 나타냈다. 이때 제작한 ‘네 사도’는 새로운 종교적 횃불을 드러내고 있었다. 루터 성경에는 요한, 베드로, 바울, 마가 등 네 사도의 서간들이 진정한 성경의 핵심이라고 쓰였다. 뒤러는 이런 관점에서 이들을 신앙의 왜곡과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경고로 종교개혁의 상징적인 인물로 그렸다. 르네상스 시기에 유행하던 인간의 네 기질(다혈질, 점액질, 담즙질, 우울질)을 표현한다는 해석이다. 

그의 신념은 1520년 이후에 제작된 종교적인 작품에서 위엄 있는 주제와 양식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런 경향은 ‘네 사도’에서 절정을 이루는 데 이 작품이 뒤러의 예술적인 고백이 들어 있는 수작이다. 이 그림에 묘사된 사도들은 개신교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글을 루터가 번역해 그림 아래 부분에 새겨 놓았는데 이 인용문에는 인간이 저지르는 오류와 허영을 신의 의지로 오해하지 않도록 시 정부에 권유하는 내용이 있다. 

이는 개신교 급진주의자들뿐 아니라 가톨릭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한편 이 네 인물을 더 보편적인 시각에서 분석하면 그들은 인간이 지닌 네 가지의 성격을 대변하며, 더 나아가 각각 네 개의 원소, 하루 중의 네 시점 그리고 인생의 네 단계 등의 개념은 이 그림의 보이지 않는 중심에 위치한 신의 존재를 에워싼 네 방향의 방위로 해석할 수 있다.  

‘네 사도’는 뒤러가 인생의 말년에 마지막으로 그린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1년 뒤 뉘른베르크 시가 공식적으로 루터교로 개종하면서 시 당국은 이 그림을 시청에 걸었다. 

뒤러는 종교개혁을 접하면서 사회적 심리, 종교개혁에 관심을 가졌다. 등장인물은 왼쪽에서 부터 신약성경의 저자인 요한, 베드로, 마가, 바울이다. 뒤러는 청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남성을 통해 인간의 네 가지 성격인 충동, 신중, 열정, 근심을 표현했다. 그림을 보면 서로 다른 체격, 서로 다른 물건들을 들고 있다. 이것은 그의 개성이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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