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벨 에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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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La Belle Epoque), 아름다운 시절. 1880년대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그리워하며 프랑스 사람들이 노래하듯이 부르는 시대의 이름이다. 

이 시기 프랑스는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며 풍요와 향락이 사람들을 사로잡을 만큼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었다. 게다가 1870년대 2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전기와 전화, 무선통신, 자동차 등의 신기술이 사람들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당시 유럽과 미국 각국은 경쟁적으로 만국박람회를 개최해 자국의 국력과 산업을 과시했는데,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는 첨단 건축기술을 자랑하는 에펠탑이 상징적인 건축물로 세워졌으며,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전등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롭고 신기한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정말로 인류가 꿈꾸던 세상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은 낙관론이 세상을 지배했다.

이러한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프랑스 파리는 수많은 새로운 예술사조가 등장하고 문화와 예술이 꽃피어나 세계의 문화도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회화, 음악, 문학의 모든 예술분야에서 기존의 인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라는 새로운 예술운동이 나타났고,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세기말적인 경향이 드러나기도 했다. 

미술분야에서는 모네, 르누아르, 드가, 피사로 등의 인상파 화가들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문학에서는 모파상,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등이, 음악분야에서는 드뷔시, 비제, 생상스, 에릭 사티 등의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속속 등장했다.

경제적 풍요는 상류계층의 과시적 소비문화를 가능케 했으며, 백화점과 카바레, 서커스, 극장, 오페라극장의 대중문화가 시대적 유행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루이비통으로 대표되는 명품이 전시된 백화점의 쇼윈도우는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첨단 장치였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경제적 번영의 이면에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억압받고 가난한 노동계층을 대변하는 사회주의와 좌파 이념이 지식인의 정신을 사로잡았으며, 정치적으로 극심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1894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드레퓌스사건은 이러한 정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연구에 의하면 자본주의 역사상 경제적 불평등이 최고조에 달한 것도 또한 이 시기였다. 세계적으로는 유럽 각국의 식민지 경쟁이 심화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각국이 식민지화되는 불행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한편으로는 욕망과 탐욕에 기초한 소비문화가 팽배한 이면에 불평등과 국가간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의한 계층간, 국가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결국 이 아름다운 시기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막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와 너무나 닮아있다. 사상 유례가 없는 경제적 풍요와 번영을 누리고 있고, K-pop으로 시작한 한류가 예술과 문화로 전 세계를 매혹시키는 경이로운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은 것을 보면, 우리도 훗날 이 시기를 회상하면서 아름다웠던 시절이라고 부르게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간의 극단적 정쟁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불평등, 불안한 국제정세가 또한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혜와 믿음이 지금보다 더 절실한 때는 없을 것 같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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