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인간에게 반드시 있는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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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작가이며 불가지론자인 볼테르는 “기독교는 어리석은 자들이나 믿는 것이요, 현명한 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다. 그런 볼테르가 죽음에 처했을 때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받았다오. 의사 선생님이여, 만약 내 생명을 6개월만 연장해 준다면 내가 가진 것의 반을 당신에게 주리이다. 나는 이제 지옥으로 가게 되는구려. 당신도 나와 함께 가야할 것이요. 그리스도여, 주 예수 그리스도여!” 하고 울부짖으며 생을 마쳤다고 한다.

돈에 묻혀 살던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도 죽음이 그 앞에 왔을 때 내 인생이 이렇게 힘없이 무너져서 죽을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며 돈의 힘도 죽음을 정복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슬퍼했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는 죽음으로 모든 관계가 끝나기 때문이다. 둘째는 죽음 이후의 사후의 세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인간이 죽음을 겁냄은 죽음이 곧 소멸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두려움이며 불행인지 모른다. 시인 존 드라이든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죽음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우리는 죽음이 무엇이고 사후 세계가 어디인지 몰라서 두려워한다.”

미얀마에 선교사로 가서 7년의 각고 끝에 한 영혼을 주님께 이끈 아도니람 저드슨과 그의 부인 앤 저드슨 부부는 불교국 미얀마에 기독교를 전파했다는 죄목으로 투옥되어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남편이 석방된 얼마 후 부인이 세상을 떠났는데 임종을 맞은 부인은 이렇게 고백했다. “오, 흩어졌던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 곧 오겠구나. 하늘 아버지의 집에서 이젠 이별이 없으리니 얼마나 기쁠까!” 그녀는 기쁨의 얼굴로 눈을 감았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반드시 죽음이라는 종말을 맞게 되고 그 종말은 피할 수가 없다. 인류의 죽음은 죄의 결과이므로 죄는 누구에게나 고통인 것이다. 성서는 말하기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고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했다.

과연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어떤 종말을 맞이할까? 사는 동안 내가 가진 믿음과 함께 일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14일 항해 도중 빙산과 충돌해 파선한 비운의 여객선이다. 당시로는 최고의 기술과 최상의 장비를 갖춘 호화 여객선이었고 절대 파선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찬 배였다. 그러나 빙산과 충돌해 2,200여 명의 승선자 중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을 포함한 1,500여 명이 살을 에는 대서양 물속에 수장되고 말았다. 그 후 육지에 게시된 승객 명단은 단 두 줄로 구분되어 있었다. 생존자와 사망자이다.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자, 지식인과 무식인, 나이 많은 자와 적은 자 등은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우리가 죽음이라는 개인의 종말을 맞이하면 하나님 나라의 명단도 똑같이 단순할 것이다. 구원받는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 영원히 산 자와 죽은 자, 천국에 갈 자와 지옥에 갈 자, 이렇게 말이다.

부자로 살던 사람과 거지로 살면서 부잣집 문 앞에서 빌어먹던 사람이 있었다. 부자는 세상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편안하게 아쉬움 없이 살았다. 그러나 거지는 부잣집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천대를 받으며 살았다.

얼마 후에 부자도 죽고 거지도 죽었다. 거지는 아픔도 고난도 배고픔도 천대받음도 없는 낙원에 가서 사후의 복을 누리고 있었다. 부자는 죽어서 음침한 음부에서 고통과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부자는 안락하고 편안하게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거지를 바라보면서 아브라함에게 거지를 보내어 그 손가락에 물 한 방울만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했다. 이에 아브라함은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눅 16:25)고 거절했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악하게 산 사람의 종말과 선하게 산 사람의 종말은 이렇게도 무섭고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다르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 땅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극악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는 많이 봐 왔다. 그런 사람들은 죽은 후에 받게 될 종말도 심판도 무섭지만 세상에서도 벌을 받게 된다. 그런 자들이 이 세상에서 받는 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생의 결과가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고 했다. 개인의 생의 종말이 오기 전에 선행을 쌓으면 하나님께서 내세의 복으로 갚아 주신다.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 우리 모두 영원한 기쁨의 감격을 누리는 종말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성실하고 선한 삶으로 완성해 생명이 끝나는 날 자신 있는 종말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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