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한국 최초 가곡 홍난파의 봉선화와 나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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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새문안교회 1층 역사관에 가면 인물전시에 애국가 작사한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독립운동가 우사 김교식, 음악가 홍난파,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 네 분의 생애 활동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네 분 다 새문안교회 독실한 모범 성도들이다.

이 가운데 음악가 홍난파는 본명은 영후(永厚)이다. 1898년 4월 10일 출생해 43세로 일찍 별세했다. 1911년 서양음악가 김인식 선생에게 바이올린을 배운 것이 음악공부의 동기였다. 기독교청년회관 문학부(1912), 조선정악양습소(1913), 일본 우에노(上野) 음악학교로 진학(1918)해 본격적으로 음악공부에 전념했다. 우에노 음악학교 가기전에 세브란스 의전에 1년 의학도였으나 그의 꿈은 음악인에 있었다. 

난파는 1931년 7월 26일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시카고 셔우드(sherwood) 음악학교에서 2년간 음악공부에 전념했다. 그리고 귀국 후에는 중앙보육학교, 경성보육학교, 이화여전 등에서 음악강의 교편도 잡았다. 그리고 음악잡지 음악계를 발행하고, 동요 100곡집, 조선가요작곡집도 발행했다. 홍난파는 1920년 22세때 봉선화 가곡을 최초로 작곡했다. 새문안교회 찬양대 지휘자 김형준이 작사한 노래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 발표한 노래로 일제의 설움 받는 민족의 한을 <1>절에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를 노래했다. <3절>에 나오는 ‘북풍한설 찬바람’은 잔인한 일제치하를 상징하고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는 조국광복을 염원하는 짚신겨레의 소망을 표현했다. 외솔 최현배 추모단체인 외솔회에서 1984년 발행한 <나라사랑> 통권 제52집은 <난파 홍영후 특집호>로 편집 발행했다. 당시 한국작곡가협회장 금수현의 <난파와 나라사랑>글을 비롯 윤석중, 민경찬, 남원옥 등의 쟁쟁한 난파연구 필진이 난파의 음악공로 업적과 나라사랑 활동을 잘 밝혀 주었다. 그 당시 외솔회 회장 곽종원 건국대 총장은 봉선화 가곡에는 민족의 한과 호소가 서려 있다고 했다. 봉선화 가곡을 불러 울분을 토로하고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전진을 다짐했다고 했다. 일제는 이 봉선화 가곡을 금지곡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1984년에 중학시절 봉선화 노래에 감명 받았던 장충식 단국대 총장은 4월 10일 단국대학교 안에 ‘난파기념음악관’을 건립하고 난파의 애국사상을 흠모했다. 난파의 단음계 노래로 애수를 띠는 ‘봉선화’,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가 있다. 민속적 5음계는 ‘금강에 살으리랏다’, ‘봄처녀’가 있다. 장음계로 ‘장안사’, ‘합창곡’, ‘봄노래’가 있다. 

동요로는 이원수의 ‘고향의 봄’, 윤석중의 ‘낮에 나온 반달’, ‘퐁당퐁당’, ‘휘파람’, ‘달맞이’ 등이 있다. 난파는 문필 실력도 훌륭해 음악만필 수필집, 처녀혼 소설집도 발행했다. 도산 안창호를 존경해 미국 유학시절에 흥사단에 입단했다. 1937년 흥사단 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4개월의 일제치하 옥고도 치뤘다. 홍난파는 봉숭아, 금봉화 등으로 불리는 봉선화는 농촌 울밑이나 마당가에 심어 두고 소박한 농민들이 사랑했다. 처녀들이나 부녀자들이 봉선화 꽃잎과 잎사귀를 백반 소금과 함께 찧어 손톱에 얹어서 봉선화 꽃물들이기도 했다. 

현철 가요 ‘봉선화 연정’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일제시대 금지곡이던 우리 나라 최초 가곡 홍난파 작곡 봉선화 가사 1절을 여기 펼쳐본다. 울밑에서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2.3절 생략. 홍난파는 봉선화 중심으로 음악을 통해 나라사랑한 애국지사이다. 나라의 문화훈장을 받았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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