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톡] 나는 멈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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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이 남은 자 사상이다.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당신의 구원을 위해 그루터기를 남겨놓으신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농부가 가을 추수를 끝내고 그 이듬해 농사를 위해 씨알을 남겨놓듯이 하나님도 그리하신다. 

요즘 목회자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한다. 어느덧 목사가 된지 35년이 지나간다. 동기들 중에 이미 은퇴한 이들도 있고, 선배들 중 상당수는 목회를 떠난 이들도 있다.

교회의 목회현장이 척박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처럼 어려운 때도 없었다. 앞을 보아도 희망이 없다. 교회는 서서히 존재의 의미를 잃어간다. 목회자와 교회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다. 코로나가 가져온 현실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것이 교회에 대한 심판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긴 교회는 이미 심판의 대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교회가 그 본래의 목적을 잃은 채 물질과 권력의 우상숭배에 빠지고, 교인들로 하여금 이념에 종노릇하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다 무너지고 파괴되어 간다. 누가 마지막까지 남을 것인가? 누가 남은 자로 살아갈 것인가?

교인들이 듣고 싶은 것만 설교해야 하는 목회자의 현실은 참으로 절망적이다. 교회와 목사가 비교되고 설교하는 목사들은 트로트 가수들의 경연대회처럼 되어버린 오늘의 현실이 슬프다. 이런 상황에서 목사들의 삶은 얼마나 우스운가?

나는 가만히 멈추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기로 했다.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해야 하는 지점에 와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온다. 분명 여기가 그 지점이다. 여기서 멈추고 다시 갈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흙탕물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맑은 물만 남을 때까지 이대로 조용히 기다리련다. 흘러갈 것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련다.

남은 자가 되려면 멈추어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나는 멈추어 가만히 이 자리에서 조용히 기다리련다. 등을 밀어도 꼼짝 않고 나는 쉬어야겠다.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은 내 것이니 말이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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