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삶의 흔적(痕跡)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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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장로님)과 함께 66년 동안 해로한 것이 하나님 은혜라 생각을 한다. 나의 삶 속에서 아픔도 있었고, 육신의 병으로 어려운 고통이 있었으나 장로님과 자식들의 사랑과 정성 그리고 매일 드리는 가정예배를 통해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아 늙어가면서 부모님께는 고마웠던 것과 잘못해 드린 것만 생각되고, 남편은 내게 잘했던 것보다는 나를 힘들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한 것들만 더 생각이 나고, 자식에겐 못해준 것만 생각하고, 주고 싶기만 한 것이 늙은 부모의 마음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88세 늙은이! 어쩔 수 없는 늙은이의 마음인 것 같다. 물론 장로님과 함께한 긴 여정에서 좋았던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서운하고 힘들었던 일들이 왜 생각이 나는지! 아마도 장로님의 알츠하이머로 인해 그런 것이라 생각도 된다.

장로님께서 타고난 성품은 온유하시며 사랑도 많으시고 가정적이며 정직하시고 근면하신 분이시다. 옥에도 티가 있듯이 인간은 나를 비롯해 누구나 흠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힘들었던 일

남편은 장로라는 직분 때문인지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시고, 지나친 동정, 그리고 고집도 있으시며 경제적인 면에 관심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 힘들었다. 남을 너무 의식하시기 때문에 ‘남들이 보면 무어라 한다. 남들이, 남들이…’ 그 소리가 너무 싫었기 때문에 아직도 ‘남들이, 다른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좀 짜증이 난다.

신앙생활에도 결혼 초에는 교회를 함께 나갈 수 있는 것만 바랐으나 분가해서 몇 년을 지나면서 갈등이 생겼었다. 나는 감리교회를 다녔고, 장로님은 장로교회를 다녔었다. 나는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해 왔었는데, 장로님의 신앙은 율법적인 면이 많았다.

주일이면 일도 하지 마라, 물건도 사지 마라, 음식점도 가지 마라, 그리고 장로님은 교회에 갈 때 입는 옷과 양말까지도 따로 구분하시고, 매일 가정예배와 작정 기도하실 때도 정장을 하셨다. 나에게까지 그렇게 원하셔서 나는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빚보증 문제였다.

나는 빚보증 서지 못하게 애써 말렸는데도 나에게 의논도 없이 큰 돈을 1할 이자로 보증을 서신 것이다. 보증을 서게 된 원인은 육사교수들이 집을 마련하려고 화랑마을(지금의 중랑구 묵동)에 공터를 사서 교수님들이 조합을 결성해 각자의 집을 마련하게 되는 과정에서 생겼다. 이때 동료 교수들이 장로님이 정직하다고 총 책임을 맡기셨었다.

집 건축은 여러 업자가 들어와서 원하는 교수들의 집을 건축했었다. 우리도 한 필지를 사서 집을 지었는데, 우리 집 맡은 업자가 주택금고 융자가 늦춰진다고 융자가 해결되면 갚겠다고 해서 우리 장로님이 동료 교수님들의 돈을 소개한 것이었다.

그리고 건축하는 동안 이경조 장로님 댁에서 전기와 수돗물을 끌어다 썼는데 건축 책임자들이 손해를 보았다고 요금을 내지를 않아 그것까지도 우리 장로님이 내시게 되었다. 

함명숙 권사

<남가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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