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삶의 흔적(痕跡)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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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약 5년을 미국에서 큰딸 가족과 함께 지나면서 매일 드리는 예배를 통해 힘을 잃지 않았고, 한국에서 살 때부터 효도하던 큰딸 내외의 돌봄으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나이 탓인지 장로님이나 나의 몸이 점점 약해지고, 고국도 더욱 그립고, 죽은 후에 고국에 묻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었다. 하나님 은혜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2009년에 돌아와 영주권도 반납하고 부모에게 최선을 다하는 둘째 아들과 함께 살게 되었고, 수년 동안 그립고 그리웠던 막내딸도 만나게 되었다. 

막내딸은 춘천에서 학원을 운영하면서도 주말마다 와서 우리를 돌봐주었다.

둘째 아들과 약 4년을 함께 지낸 후 2013년에 며느리 목 권사가 두 아들 교육을 위해 이민 갔던 캐나다에서 아들 둘을 대학에 진학시키고 귀국해서 두 내외는 회사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며느리 원 사모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장만해서 노후에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장로님과 나는 불편없이 큰 아파트에서 오랜만에 둘만의 삶을 살게 되어서 행복했었다.

2014년 6월 16일에 장로님이 나에게 이렇게 생일 카드와 편지를 주셨다. 항상 가장 사랑한다는 말은 누차 들었으나 고생 많았고 고맙다는 편지! 눈물이 났다.

청아에게

육사교수 봉급으로는 도저히 아이들 교육을 시킬 수가 없어 ‘피아노 레슨’을 통해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던 지난날의 수고! 필동의 눈길을 썰매 타다시피 해야만 했던 언덕길, 그리고 ‘피아노 레슨’하러 어느 집을 방문하면 공교롭게도 ‘거지’하고 함께 마주쳐야만 했던 ‘대문 앞’.

이게 다 지난날의 생생했던 당신의 고생스러웠던 이야기예요. 고마워요. 

밥 먹듯 해야만 했던 지난날의 고생! 이래서 고생 끝에 4남매를 잘 교육시켜 왔던거라 생각해요. 고마워요. 지난날의 수고가 오늘의 추억으로 ‘아들딸들’의 훌륭한 삶을 가져다 준거예요. 수고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부디 건강하게 축복받는 여생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요.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이 항상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요.

2014년 6월 16일

 청로가

그러나 행복도 잠깐! 장로님의 기억력이 점점 없어져 갔다. 장로님 친구분도 이상하다고 나에게 검사해 보라고 권유를 하셔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약 6년 전 2015년 6월에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고서야 이해가 되어서 더욱 잘 해드리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장로님은 아직은 아침이면 성경 보시고 기도하시고 신문 보시며 텔레비전도 보시니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장로님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장병에 효자 없다는 말대로 매일 반복되는 힘든 일 때문에 나는 하루도 수차례 짜증을 낸다. 그리고 저녁이면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함명숙 권사

<남가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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