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춘원의 첫사랑, 화가 나혜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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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린은 그것을 손병희 등의 동의를 받아 민족대표 33명의 추인을 끝냈다. 선언서 뒷부분의 공약 3장은 만해 한용운이 겨우 작성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기미독립선언서’인 것이다.

그후, 귀국해서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조선의 문명화와 독립을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나 개성이 강한 세 사람은 그들의 정치적 노선에 따라 때론 격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이들 동경삼재는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를 제외하곤, 일본 식민지의 지배 정책 변화와 해방과 분단의 시대 상황에서 판이하게 다른 길을 걸어갔다.

해방과 분단 전후 동경삼재의 삶의 궤적은 한말 일제 강점기란 시대를 선도했던 우리 지식인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동경에서 조선으로 돌아 온 동경삼재는 식민지 현실에서 민족주의를 혹독하게 체험했다.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앞서 가는 일본과 비교하며 헐벗은 조선의 낙후된 민족의 상황을 몹시 아파했다.

그래서 이들은 동포들을 계몽할 목적으로 각자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광수는 오산학교의 교사가 되고, 최남선은 신문관을 세우고 잡지 ‘소년’을 발간하는 등 출판과 인쇄문화에 힘쓰면서 청년들에게 신문명을 소개했다. 홍명희도 귀국을 서둘러 했고 중국 지역의 민족운동가와 교류하면서 조선의 앞날을 계획하며 장래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던 동경삼재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28년 10월 육당 최남선은 돌연 일제가 설립한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에 촉탁으로 들어가고, 총독부 중추원 참의가 되었다.

계몽운동가요, 민족의 지성이었던 육당은 하루 아침에 변절자로 전락했다. 그 무렵 어느 날 길거리에서 육당은 만해 한용운을 만났다. “만해, 오랜만이오.” 최남선이 한용운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당신이 누구요?” 만해는 반갑게 손을 내 미는 육당을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하며 누구냐고 반문했다.

“나는 육당 최남선이요.” “뭐, 육당? 그 사람은 내가 장례 지낸 지 오래인 고인이오.” 육당은 만해로부터 길거리에서 이렇게 치욕적인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어찌 이뿐이랴. 춘원도 만해에게서 큰 봉변을 당했던 일이 있다.

춘원이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와서 바로 친일 변절한 어느날이었다. 춘원이 살고 있는 집 대문밖에 어떤 사람이 와서 상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면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놀란 춘원이 밖에 나가 보니, 다른 사람 아닌 만해 한용운이 상복을 차려입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형님! 이게 어찌된 일이오?” “자네, 아직 모르고 있었나?” “뭘 말이오?” “춘원이 죽었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애통해서 곡을 하고 있는 거여. 몹쓸 사람! 벌써 죽다니 아깝도다! 쯧쯧….” “형님,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갑시다.”

춘원이 쩔쩔매며 만해를 부축하려고 했다. 만해는 매몰차게 손끝을 뿌리치며 “그 더러운 손 얼른 치우시오” 하면서 깔아 놓은 돗자리를 둘둘 말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린 일도 있다 했다. 일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의 친일, 변절에 화가 치민 벽초 홍명희가 흥분하면서 만해 한용운을 찾아가 이렇게 분을 냈다. 

“만해, 이 개보다 못한 놈들 다 있나?” “벽초, 그 놈들은 개가 아니오!” “형님, 지금 뭐라구 했소? 그 놈들이 개가 아니란 말이오?” 벽초가 발끈해서 달려들었다. “개는 주인을 절대 배신하지 않소. 개가 들으면 섭섭해 할꺼요.” 이 말을 들은 홍명희는 이 말이 맞다 생각하고 마침 앞마당을 지나고 있는 개에게 허리를 굽혀 읊조렸다는 일화도 있다. 동경삼재에 관한 일화는 이밖에도 많다. 벽초의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벽초 홍명희가 어느 날 집으로 오다가 그의 선산에서 몰래 벌목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벽초는 평소에 다니던 길을 내버려두고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후에 이르기를 그 사람 눈에 자신이 띄면 미안해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만큼 벽초는 마음이 깊었다. 성격도 너무 개방적이어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했는데 얼마나 개방적이었냐면, 아들 홍기문과도 맞담배를 피울 정도였다고 한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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