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신비하고 위대한 역사는 만남에서 – 누가복음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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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는 참된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독일의 의사이며 작가인 한스 카로사(Hans Carossa)는 간결하게 “인생은 만남이다”라고 했다. 

이 한마디 속에서 인간의 깊은 정의와 철학과 진리, 위대함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삶이란 모두 만남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남이 시작된다. 만남을 한문으로는 조우(遭遇) 또는 해후(邂逅)라고 한다. 영어의 ‘Encounter’이다.

하나님이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가 외롭지 않게 하시려고 하와를 만드셨다. 

이때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했다. 예수님은 어부인 베드로를 만나 제자 삼으며 만남의 메시지를 이렇게 주셨다.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구원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 전체는 만남이다. 살아가면서 가정에서는 부모와 처자를 만나고, 사회에서는 스승과 제자를 만나고, 친구와 동료를 만난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직장에서, 대중교통에서, 길에서, 식당이나 찻집에서 매일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상이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인생은 만남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위로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땅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서 역사가 이루어진다. 공자와 안연의 조우, 이것은 인격 대 인격의 성실한 교육적 만남이다. 

괴테와 쉴러의 해후, 그것은 우정과 우정의 두터운 인간적 만남이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만남, 이것은 이성과의 맑은 순애적 만남이다.

실존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인생에서 두 가지 만남의 형태를 말했다. 하나는 겉 사람과 겉 사람의 옅은 피상적인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인격과 인격의 깊은 실존적 만남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인생이란 믿음 안에서의 영적인 만남이다. 나와 너의 깊고 성실한 만남, 이것이 우리가 갖고 싶은 조우요, 이 조우 위에 인생의 행복을 건설해야 한다. 

진실한 나와 너의 만남처럼 기쁘고 행복한 일이 없다. 좋은 부모를 만나는 기쁨, 진실한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행복, 믿음직한 제자를 만나는 보람, 진실한 애인을 만나는 희열, 좋은 남편, 착한 아내를 만나는 행복, 참되고 의로운 인간을 만나는 기쁨, 이 모두가 나와 너의 진실한 만남에서 형성된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절망했던 나는 좋은 만남을 통해 불행이 행복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절망했던 나는 예수님의 “떠나라”라는 음성을 듣고 탈출했다. 그리고 방랑 생활 속에서 그때 만난 예수님이 나를 돌봐 주셨다. 

방 한 칸, 머리 둘 곳 하나 없는 내가 평양에서 선교하던 곽안련 선교사님의 아들 곽안전 선교사님을 만남으로써 중·고등학교 그리고 신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성직자가 될 수 있었다. 이 만남이야말로 내 삶을 바꾼 행복한 만남, 신비한 만남이다.

누가복음 19장 5~6절을 보면,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가는 결단을 해 예수님을 만났고, 그로 말미암아 나다운 나, 인생다운 인생이 되었으며, 구원에 이르는 복을 받았다. 이렇듯 인생을 살면서 진실하고 성실한 만남, 믿음 안에서 영적인 만남을 이루기 위해 인격과 인격이, 믿음과 믿음이 만나는 축복된 삶이 되기를 고대한다. 

그리고 그 위에 인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된 삶이 되기를 바란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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