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관동대지진 100년, 한민족의 민족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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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인 숙명의 역사라고나 할까. 반만년의 민족사에 1천 번 가까이 외세의 침략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조선 2천 년, 신라 1천 년, 부여·고구려·백제 각각 7백 년, 고려와 조선이 5백 년 이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고난에 굴복치 않는 우리의 민족성을 말해준다. 그것이 바로 한민족의 민족혼(民族魂)이다. 민족혼이 유린당하고 말살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도 누군가, 또는 집단지성이 분연히 일어나 민족혼을 되살리기 위해 살아 숨쉬는 역사의 굴레를 힘차게 돌렸다.

그 숨결 가운데 일제침략에 맞선 항일투쟁기 당시 적국의 수도, 적국의 심장부에서 한민족(韓民族)의 혼(魂)을 되살리고자 고군분투했던 한국YMCA가 있었다. 근대화의 여명기인 1903.10.28. 개화자강, 자주독립의 기치로 창립된 서울YMCA가 재일한국유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1906.11.5. 설립한 재일본한국YMCA이다. 재일본한국YMCA는 1919.2.8. 삼일혁명(3.1독립만세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헌장(헌법)의 기초가 된 2.8독립선언을 유학생들을 모아 조직하고 결행했다. 일본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동경유학생이 관비(官費), 사비 합쳐 678명이었는데 이 거사에 600여 명이 참여했다.

같은 달 9, 12, 24일 일본황궁(皇居, 고쿄) 앞 히비야(日比谷) 공원에서 2.8독립선언에 이은 제2, 제3, 제4의 독립을 외치다 일본경찰에 연행된 최승만 선생을 특별히 민족혼의 화신 중 한 분으로 꼽고 싶다. 이유인 즉, 올해가 일본 관동대지진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1923.9.1.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사회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그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유언비어를 퍼트려 일본의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되었음을 기억한다. 최승만은 희생자가 233명이라 발표한 일본정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재(罹災)조선동포위문반을 결성해 사실조사 후 희생자가 6,661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독립신문에 발표했다. 최승만은 당시 재일본한국YMCA 3대 총무였으며, 1915년도에 서울YMCA 영어과에 편입해 공부한 서울YMCA의 인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민간운동단체라 회자되는 서울YMCA는 이러한 점에서 독립운동단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3.1독립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고, 그 중 박희도(朴熙道), 이필주(李弼柱), 오화영(吳華英), 양전백(梁甸伯), 박동완(朴東完), 이갑성(李甲成), 정춘수(鄭春洙), 최성모(崔聖模), 이승훈(李承薰) 이상 9명이 서울YMCA 사람인 것은 독립운동단체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해 준다.

올해로 창립 120주년을 맞이하는 서울YMCA!. 기억해야 할 것, 기념해야 할 것, 기려야 할 것을 생각하며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펼쳐야 하겠지만 우리민족을 구원으로 인도하고자 서울YMCA를 창립시키고, 그 성상 동안 함께 호흡해 주신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는 가운데 새로운 사명을 받아 안아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건 성경 66권의 핵심이자 예수 자신이기도 한 “사랑”으로 세상을 물들이는 것일 것이다.

조규태 서울YM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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