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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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량 순례단의 역사(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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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량 순례길을 개발하기 위해 그간 많은 노력과 시간과 힘을 쏟았다. 그와 비례되는 함량만큼 많은 오해도 따라 왔다. 

그런데, 그런 오해는 단지 오해이다. 필자는 배위량 순례길을 개발해 이 일로 나의 사업을 하고자 계획하지도 않았고 명예를 위한 일로 이 일을 하지도 않았다. 순례를 한다고해 그것에 무슨 명예가 따라오면, 순례를 한다고 해서 무슨 경제적인 이익이 되는지 사람들은 정말 기발한 생각으로 오해를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오해 속에서라도 내가 배위량순례단 연합 회장을 맡게 될 2023년 5월 31일까지는 꿋꿋하게 이 일을 잘 감당하고 싶다. 그리고 6월 1일부터 회장을 맡게 되는 후임도 여러 가지 오해를 하겠지만, 꿋꿋하게 자기의 직무를 잘 감당하길 희망한다. 지금까지 무수한 오해 속에서도 배위량 길에서 같이 순례를 하기 위해 순례단을 모집했고, 순례를 행하면서 그 노정에서 <길위의 배위량 학술대회>를 준비해 배위량을 연구하는 일을 계속해 왔다. 순례만 하지 않고 배위량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와 발표를 하는 학술대회를 행한 것은 아래 두 가지의 질문 때문이다.

배위량이 누구냐?

왜 순례를 해야 하는가?

이 2가지 질문은 순례길에서 만났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행했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의도 때문이었다. 한국교회사와 한국초기 선교역사에 대해 신학교 다닐 때 배운 한국교회사 지식이 거의 전부였던 성서학자로서 그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지 않은 짧은 지식으로 대답이 궁해 필자 스스로 공부해야 했고 필자의 공부가 주관적인 것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연구자들을 찾고 함께 배위량에 대해 연구하고 연구한 논문을 발표하는 기회를 배위량 길을 순례하는 동안 <길위의 배위량 학술대회>를 준비해 관심을 가진 분들을 초청해 진행했다. 

학자들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물론 무슨 큰 이슈가 있는 사건과 관련된 것이라면 학자들이 그 이슈와 관련된 연구를 하겠지만, 그 때까지는 묻혀져 있었던 배위량을 찾고 연구하고 학술대회를 하는 일이 단지 신기하고 특이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더욱이 한국교회사 전공이나, 선교학 전공도 아닌 성서학자가 배위량 선교사에 대한 학술대회를 한다고 학자를 찾고 배위량에 관한 논문을 부탁하니 부탁을 받는 학자가 의아해 했다. 관심이 없는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 논문을 쓴다는 것은 그 만큼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래서 필자가 대면해 부탁하거나 전화로 부탁해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관심이 없다고 말하거나 다른 일로 바빠서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거절한다. 성서학자가 한국교회사 전공자와 한국초기 선교사 연구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어렵게 찾아도 생소한 분야에 대한 연구 논문을 작성하고 발표하는 것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더 많이 들어가는 일인데, 그것에 대한 정당한 보수가 따르지 않으면 쉽게 응답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 통상적인 인간세계의 상식이다. 

목회자의 삶도 시간 싸움이다. 

학자의 삶도 마찬가지로 시간 싸움이다.

누가 무엇에 관한 연구를 하고 그 연구가 무슨 영향을 끼치는가가 중요하다.

배위량에 관한 연구를 제의하고 부탁할 때 대부분의 연구자들을 필자가 성서학자로서 배위량 선교사에 관한 학문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알고 경이로워 한다. 함께 하고 싶다. 하지만, 살아가야 할 자신의 현실이 있어, 함께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필자가 신학대학을 은퇴한지 3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3년 동안 신학대학교 안에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인구가 절벽으로 떨어져 유치원도 폐원하는 상황에서 신학대학이 생존하느냐 마느냐의 생존전략은 당연할 것이다. 이 싸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장담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신입생 수급문제는 긴급한 과제이기에 온 학교와 교직원이 매달려야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학교로부터 정상적인 급료가 지급되지 않아 신학대학교 교원 중에서 어떤 분들은 교회로 이동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전임교수이지만, 학교에서 받는 월급으로 생활이 어려워, 다른 생활 대책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 듯하다.

학교도 생존해야 되므로 정년제 전임교원을 뽑는 일을 거의 하지 못하고 신임교원을 비정년으로 뽑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전임교원이 되어도 비정년직 교원은 교수의 명예는 가질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한 과제를 안고 살아야 하기에 업으로 연구를 해 한국연구재단에 목을 매고 연구를 하든지, 아니면 부업으로 다른 일꺼리를 찾아야 하는 현실이다. 한국의 큰 어느 교단의 신학대학교 정년직 교원은 이중직을 가질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막았지만, 또 다른 어느 대형 교단 신학대학교 교원은 대부분 목회를 하면서 교수 생활을 한다. 그 분들은 제도적으로 이중직을 허용받았으니, 경제적인 면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신학대학교 교원들에게 이중직을 금지하는 이유가 신학교 졸업생들이 일할 곳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단의 교원이 신학교 졸업생의 진로를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교단차원에서 그런 제도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속 노회의 시골 미자립교회, 개척교회의 교역자들을 보호하는 보완 장치처럼 오래도록 공부하고 와서 일할 곳이 없는 목회자들과 신학대학의 비정년직으로 일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교역자들에게도 개척교회 교역자와 비슷하게 노회에서 지원하는 보완책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일은 이 시대의 시대적인 현상이라, 누가 그것을 탓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고상한 일을 한다고 해도 가족이 굶고 있는 상황이면, 그 고상한 일을 계속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지난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는 배위량순례단에게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끼쳤다. 순례계획을 짜도 아무도 오길 원치 않아 2년 정도 순례를 쉬었다. 무수하게 걸어야 하는 그 길을 모두 정확하게 기억하기도 어려운데, 그 2년간 순례길이 많이 변했다. 그리고 그 2년 동안에 순례를 하지 않고 보니, 어렵게 찾고 걸었던 그 길을 잊게 되어 그 길을 다시 찾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배위량 길을 순례하는데 일년에 약 1달 정도의 시간을 할애한다. 하지만, 한 달을 계속 이어서 순례를 하지 못하고, 몇 가지 계획으로 순례를 하게 된다. 그것은 배위량순례단 연합 회장으로서 순례단을 이끌고 단장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아무도 순례를 하기 원치 않을 때는 어렵게 순례 길을 찾고 개척한 것을 1년에 한 번씩이라도 걷지 않으면 길을 잊어 버리게 되어 나라도 걸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순례길에 나서고 있다. 정년 퇴임을 하기 전에는 혼자 걷는 순례를 시간이 나는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에 많이 했다. 여름은 여름대로 순례하고 가을에는 가을대로 순례하고 겨울은 겨울대로 순례를 하고 봄에는 봄대로 순례를 해야 한다. 순례에 처음 나온 순례단원들은 “왜 봄에 하느냐? 봄에는 미세먼지도 많이 생기고 학생들이 수업을 하는데, 순례를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으니, 방학 때 하자”. 그래서 그 순례단원들의 요청에 따라 여름 방학에 계획을 세우면 다들 학교 일정, 교회 일정, 휴가 일정이 달라 8월 말경에나 겨우 일정을 맞추어 순례 일정을 잡고 순례를 하게 된다. 그러나 8월 말이면 대개 아직까지 더위가 물러가지 않아 1km순례를 하는 것도 힘들 때도 있다. 그 여름 뙤약볕에 순례를 한 번 행한 순례단원 중에는 여름 햇빛 아래서 순례를 행한 것을 불합리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다시는 순례란 말을 하는 것까지도 힘들어 하는 단원도 있다. 하늘 높고 말이 살찌는 가을에 순례를 하자고 해 가을에 순례를 시행하면 가을은 가을대로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겨울은 겨울대로 좋은 점 나쁜 점이 있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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