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요셉의 상처를 위한 디아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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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스컴에서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설립자 정명석씨에 관한 내용이 자주 나옵니다. 자신을 메시아라 칭하고 성경을 비유풀이로 왜곡하며 잘못된 구원론을 가르치고 있기에 주요 교단들은 반기독교적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번에 떠들썩하게 한 이슈는 교주의 지속적인 성추행과 성폭행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성적 학대는 가해자가 해당 인물이 원치 않는 성적 행동을 강요하는 행위를 일컫는데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성적학대는 신체적, 정서적으로 엄청난 상처를 주게 되며 성인이 된 후에도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성서 속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온 후 17살의 나이에 여주인의 성희롱과 학대를 날마다 받았습니다. 이 일로 요셉은 교도소까지 가게 됩니다. 여주인은 자신의 지위로 약자를 억압하고 지속적인 학대를 가합니다. 위안부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금전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 학대를 경험한 한국 여인들의 한에 관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폭력은 육체 뿐 아니라 영혼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그 생채기는 절대 돈으로 치유되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믿었던 목회자에게서 받은 성적 학대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전쟁에 끌려간 위안부들이 당했던 성적 학대가 남긴 가슴의 상처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을지 모릅니다.

미국의 유명 정신과 의사가 만든 ‘사죄 십계명’에 보면 ‘가해자를 겸손하게 만들고, 가해자로 하여금 피해자 중심으로 생각하고 피해자의 상처를 보상할 의무가 있는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가해자에게 지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서에서도 비슷한 사죄의 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요셉을 팔아넘긴 형들이 후에 요셉에게 사죄할 때, 그들은 자신을 과격하게 낮추었습니다(창 50:18). 그들의 사죄에는 자기를 정당화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 속 아들 역시 아버지에게 회개할 때 자신을 철저히 낮췄습니다. 

진정한 사죄는 피해자가 받은 상처의 치유를 목적으로 합니다. 이를 위해 사죄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지키기보다 철저히 낮아져야 하고, 피해자 입장에서 자신의 행위를 평가하고, 피해자의 상처가 회복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이제는 충분하다고 말할 때까지 “제가 잘못했습니다”를 반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어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가해자들의 사죄는 그 상처의 치유가 온전히 치유될 때까지 지속되는 것이 정의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수님이 보여주신 디아코니아입니다. 상한 몸의 회복뿐 아니라 죄로 병든 우리의 마음까지 어루만지시는 예수님의 섬김입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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