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홍익인간과 디아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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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고조선의 역사에는 홍익인간이라는 건국이념이 있습니다. 환웅이 나라를 세우면서 인간의 360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바탕으로 고조선은 태동하였습니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에는 이미 복지의 이념이 담겨있습니다. 홍익인간의 윤리 정신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순수한 인간애’, 다시 말하면 본래적 인간 본성에서 생기는 자발적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홍익인간의 이념은 기독교가 추구하는 정신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서 자기의 불편이나 힘듦을 감수하며 남을 유익하게 해야 합니다. 차별 없이 만민에게 균등한 자비심을 갖고 남녀와 민족이 하나로 뭉쳐서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살기 좋은 아름다운 사회와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무의식 속에 인간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의 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보편적 질서를 배제하지 않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홍익인간의 정신이 성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모습인 디아코니아의 정신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하여 우리 민족이 기독교 정신에서 태동한 것은 아닙니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디아코니아의 정신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타인에 대한 긍휼과 선행 등의 비슷한 점이 많아서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잘 정착하고 이로 인해 이타중심적인 선교가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창세기 45장에 보면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히는 요셉의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형제들을 용서하면서 무엇이라 합니까? 내가 당신들에게 베푸는 용서와 섬김은 인간적인 배려나 섬김이 아니고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다.”(창45:7)고 말합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한 이유는 하나님의 예정가운데 이루어진 구원의 행위였습니다. 신앙인의 긍휼과 섬김, 즉 약자를 돕는 이유는 구제 차원의 복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섬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을 향한 우리의 섬김과 도움은 영혼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디아코니아입니다. 홍익인간의 정신이 디아코니아 정신과 분명 다르듯, 사회복지와 디아코니아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이들을 찾아오셨고 그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해주셨습니다.(눅 19:10) 인간적인 용서와 배려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섬김의 최종 목적은 영혼구원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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