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인간은 다섯 번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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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숭실대학 철학과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1920~2013) 교수께서 쓰신 글이다. 안병욱 교수 가정은 내가 청년시절 출석하던 기장(基長) 성암교회(城岩)교회에 출석하여 자주 뵈었고 안 교수께서 《청년회 모임》에 오셔서 특강을 해주신 일도 있는데 그 어른의 현란(絢爛)한 어휘구사력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두뇌가 모두 명석했던 장남 동명(東明, 위스텍 사장, 1953~ ), 차남 동일(東一, 세계보건기구(WHO) 남태평양 대표, 1955~ ), 삼남 동규(東奎, 한림대 부총장, 1957~ ), 세 아드님의 중고등 학창시절, 교회의 중고등부에서 그들을 지도했던 인연이 있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김형석 교수, 서울대 철학과 김태길 교수, 숭실대 철학과 안병욱 교수는 모두 1920년생 동갑으로 우정이 막역했던 「철학자 삼총사」로 불리었다. 안병욱 교수는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숭실대 철학과에 재직하면서 당시 월간지 《사상계》의 주간(主幹)과 흥사단(興士團) 공의회장을 역임하였다. 우리 사회의 저명한 철학자 안병욱 교수께서 노년에 이르러 그가 바라본 “인간의 탄생”에 대한 그의 ‘철학적인 견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그의 글을 ‘신앙산책’의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여기에 옮겨 싣는다.  

철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이 세상에 다섯 번 태어난다. “첫 번째의 탄생”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의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생물학적 탄생”이다. 이것은 하나의 운명이요, 타의(他意)요, 섭리(攝理)요, 불가사의(不可思議)다. 나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어떤 운명이, 어떤 존재가,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이 세상에 내어던진 것이다. 실존 철학자의 말과 같이 우리는 이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 곧 “피투성(被投性)”을 가진 존재이다. 인간은 타의에서 시작하여 타의로 끝난다. 나의 탄생도 타의요, 나의 죽음도 타의다. 생물학적 탄생에서 나의 존재가 시작한다. 우리는 이 탄생을 감사 속에 받아들여야 한다.

“두 번째의 탄생”은 “사랑할 때”다.  한 남성이 한 여성을,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깊이 사랑할 때, 우리는 새로운 생을 발견하고 체험한다. 사랑은 도취요, 황홀이요, 환희요, 신비다. 이 세상에서 이성에 대한 사랑처럼 강한 감정이 없고, 뜨거운 정열이 없고, 아름다운 희열이 없다. 사랑 앞에는 양심도 침묵하고, 이성도 무력하고, 도덕도 빛을 잃고, 체면도 무너진다. 그만큼 사랑은 강하다. 사랑은 어떤 때는 죽음보다도 강하다. 사랑은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 중에서 가장 큰 축복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불나비가 불 속에 뛰어들어 스스로의 생명을 끊듯이, 사랑 때문에 파멸하는 경우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사랑을 슬기롭게 관리해야 한다.

“세 번째의 탄생”은, “종교적 탄생”이다. 하나님을 알고, 신을 체험하고, 절대자를 만나고, 초월자(超越者) 앞에 설 때다. 그것은 종교적 탄생이다. 그것은 생의 심화(深化)요, 삶의 혁명이요,  존재의 중생이다. 그것은 낡은 자아가 죽고, 새로운 자아가 다시 태어나는 신생이요, 소아(小我)가 대아(大我)로 비약하는 존재의 큰 변화다. 종교적인 탄생을 체험 하지 않고 생을 마치는 사람이 허다하다. ‘종교적 탄생’은 감사의 생이요, 참회의 생이다. 

“네 번째의 탄생”은, “죽음 앞에 설 때”다.  죽음은 생의 종말이요, 존재의 부정이요, 인생의 종지부(終止符)요, 일체가 끝이 나는 것이다. 사랑하는 모든 것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다. 죽음에는 허무감이 따르고, 공포감이 따르고 절망감이 따른다. 죽음은 예외 없이 우리를 찾아오고, 예고 없이 우리를 엄습한다. 죽음은 인간의 가장 으뜸가는 ‘한계상황’이다. 죽음 앞에 선다는 것은 나의 종말 앞에 서는 것이요, 허무 앞에 서는 것이요, 한계 앞에 서는 것이다. 죽음을 심각하게 느낄 때, 우리의 생은 엄숙해지고, 진지해지고, 깊어진다.

“마지막 다섯 번째의 탄생”은 “철학적 탄생”이다. 자기의 사명을 발견하고 자각(自覺)할 때다. 이것을 위해서 살고 이것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질 때, 우리의 생은 심원(深遠)해지고, 성실해지고, 확고해진다. 인간생애의 최고의 날은 자기의 사명을 깨닫는 날이다. 인간은 사명적 존재이다. 나의 생명이 나의 사명을  만날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성숙한 자아로 성장한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이냐, 나는 어떻게 살 것이냐, 이것은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하여 명확한 대답을 주는 것이 사명감이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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