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발언대] 원칙과 임기응변, 정(正)이냐  중(中)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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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우곤과 맹자의 대화중에 순우곤(淳于髡)은 “남녀 간에 물건을 주고 받으면서 손이 닿지 않도록 하는 게 예(禮)입니까?”라고 맹자에게 물었다. 맹자가 답하길 “예(禮)다”라고 답했다. 다시 순우곤은 “형수나 제수[嫂]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써서 구해 주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맹자는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졌는데도 손을 써서 구해 주지 않는다면 이는 승냥이나 이리와 다를바 없다”고 답했다. 이와 같이 남녀간에 물건을 주고 받으면서 손이 닿지 않도록 하는 것은 예이고,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써서 구해 주는 것은 권도[權=權道=時中]이다. 

이말은 일의 이치[事理=禮]에 따라 행동할 때와 일의 형세[事勢=命]에 따라 행동할 때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이다. 쉽게 말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매뉴얼이나 원칙을 고집하는 사람은 정(正)을 고집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급박한 상황에서 그 사안을 잘 풀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매뉴얼이나 원칙을 굽히고 펴고 할 줄 안다면 그는 중(中)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때 중은 “가운데”가 아니라 “적중하다”이다.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원칙(正)보다 더 위에 있는 게 있다. 생명(中)을 구하는 일이다. 원칙도 안 지키는 사람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도 생명이 달린 일은 원칙을 변형 내지는 조정해야 한다. 임기응변(臨機應變)이다.(필자가 받은 글 첨삭)

성경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는데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일을 한다(원칙正을 어김)하니 예수님께서 괜찮다(생명中) 하셨다. 또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원칙正-즉 안식일을 범함) 않겠느냐 안식일에 선(생명中)을 행하는 것이 옳다하셨다. 

필자는 성경의 인물 중 히스기야의 기도를 유심히 본다. 어려움에 처하여 기도하는 사람의 전부 다가 잘못했으니 용서하여 주시고 이 난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식으로 기도한다. 근데 히스기야는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였다고 했다. 북쪽 이스라엘 왕들 18명과 남쪽 유다왕들 18명중에 정직히 행했다고 성경이 기록하는 왕은 남쪽 유다왕 중에 8명 정도이다. 그 8명도 정직히는 행했지만 대부분 산당은 페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히스기야는 산당도 헐어(왕하 21:03) 버렸다. 어찌 보면 히스기야의 기도는 좀 건방진 것 같고 교만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평소에 죄 짓지 않고 진실과 전심으로 선하게 사는 게 쉬운 일인가? 정직함으로 살아가는 삶을 기도해 본다.

이상조 장로

<경서노회 은퇴장로회 전 회장·선산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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