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챗 GPT시대의 ‘그 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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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전 겟세마네 눈물과 골고다의 아픔, 십자가의 고통을 이겨내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늘 눈물이 난다. 한국장로대학원 총동문회 회장 임기를 마쳤다. 그네뛰기놀이에서 최대한 뒤로 멀리가면, 최대한 앞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뒤로 물러서기를 많이 했는데도 코로나에 발목이 잡혔다. 회장역할을 잘하기 위해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초심으로 돌아가려 노력했다. 장로는 성도와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본이 되는 인격과 삶으로 겸손히 돕고 보살피려 한다. 사람을 위해 돈을 만들었는데 돈에 집착하다 보니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었는데 너무 좋은 옷을 입다 보니 사람이 옷을 보호하게 되고, 사람이 살아가려고 집을 마련했는데 사람이 집을 지키는 개가 되어버린다. 이것을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고 한다. 필자는 성도들을 잘 섬기고 성경적으로 살면서 하늘나라 갈 때 후회 없이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산다. 학자들은 2045년에는 기독교가 소멸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목사님들도 교회생존방법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메타버스(metaverse, 가상세계)라는 세상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고 1992년 닐 스티븐슨 소설 ‘스노크래시’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서다. 2045년 이후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한다. 사람의 기능을 AI(인공지능)가 다해내고 이제는 챗 GPT까지 등장하여 모든 요청을 0.2초 내에 해결해주고 있다. 설교문, 자기소개서, 논문, 소설 같은 것도 주문하면 0.2초 내에 만들어 준다니 입이 벌어진다. 아날로그 세대인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 주문하는데도 키오스크(간이 주문대)앞에서 쩔쩔매는데 천지가 개벽되는 세상이 불편하기만 하다. 미국인 친구가 내가 쓴 칼럼을 영어로 번역해서 보내왔다. 그는 구글 번역기로 내 글을 썼다고 한다. 내 글의 영어 번역본을 보고 놀랐다. 그런데 한 구절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칼럼은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 했을 때 그곳의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태극마크가 새겨진 비행기를 보고 수건을 흔들며 향수를 달랬다는 것을 묘사했는데, 바로 그 부분에서 오역을 했다. 원래 한글 구절은 “태극마크를 단 비행기를 보고 가슴에 묻어두었던 향수를 쏟아내고 있는 모습이었다.”인데, 번역은 “It was a look of pouring out the perfume that buried in the heart after seeing the plane with the Taegeuk mark on it”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말한 향수(鄕愁)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인데 구글이 찾아낸 단어는 몸에 뿌리는 향수(香水)였던 것이다. 챗GPT가 온통 세상의 화제 중심으로 떠오를 때여서 문득 이런 상상을 해봤다. “챗GPT에게 번역하라고 했다면 향수(鄕愁)와 향수(香水)는 구별했을까?”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챗GPT 이야기꽃을 피운다. 모든 사람들이 기대와 우려를 한다. 챗GPT를 사용해 본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논문 같은 긴 글을 주고 일정한 분량으로 줄이라고 하면 순식간에 요약해 낸다고 한다. 어떤 주제와 조건을 달아 에세이를 쓰라고 하면 챗GPT는 문장체계를 어엿이 갖춘 글을 만들어낸다니···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것은 인간의 소통수단인데 그중에서도 글쓰기는 가장 창의적이고 정교한 두뇌활동인데 이 일을 인공지능이 해버린다면 인간은 무얼 할까? 더구나 우리나라는 인구도 줄어들고 기독교를 불신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니 한국교회가 걱정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0.78%로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종교개혁진원지 유럽을 방문하여 위클리프, 후스, 루터, 츠빙글리, 칼뱅, 웨슬리 등 종교개혁자들의 발자취와 사상, 삶과 가르침을 견학한 바 있다. 그때 프랑스 칼뱅 생가를 방문했는데 해설사가 ‘이곳에는 개신교 신자가 한 명도 없다’는 말을 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베트남 전쟁 때 참전한 우리에게 수교 후에도 베트남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던 반감을 달랠 수가 없었다. 그걸 일거에 해소시킨 사람이 축구감독 박항서였다. 한사람의 힘이 이렇듯 우리 장로님들도 남은 생애를 기독교 존속의 공헌자 ‘그 한사람’이 되셨으면 좋겠다. 짧은 인생을 서로 미워하면서 허송해버리고 잘못된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어리석은 행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이 헛되고 헛된 것을 추구한 후 인생의 노년에서 세월을 한탄하고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킬 수 없어 슬픔과 비탄에 빠지는 일이 많다. 우리스스로 지혜롭게 살아가자.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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