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무료급식 안나의 집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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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성남 성당부속건물인 ‘안나의 집’이 있다. 김하종(60) 이탈리아 신부가 나무 주걱을 들고 큰 솥에 담긴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그는 신부이나 사제(司祭)복을 입지 않고 조리사 모자와 청바지에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한다. 그 외에 10여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550명분의 미역국을 만들기 위해 주일을 빼고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음식을 만들어 4시30분부터 7시까지 노숙자들에게 배식을 한다. 특별히 지난 추석 연휴가 유난히 길어 다른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으나 안나의 집만 문을 열어 갈데 없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왔다.

그는 이탈리아 신부로 1990년 한국에 와서 김대건 신부의 ‘김’자와 하나님의 ‘하’자와 종이라는 ‘종’자를 부쳐 ‘김하종’이라고 한국식 이름으로 개명했다. 서강대학에서 2년간 한국어 코스를 마치고 당시 빈민들이 살았던 성남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성남성당 주변에 독거노인들에게 점심을 급식했으나 그 후 IMF때문에 실직자와 노숙자들이 늘어나 이들에게 무료로 급식을 제공했다.

어느 날 천주교 신자가 찾아와 현재 모란역 앞에 3층 건물을 빌려드리겠다고 해 그곳에 무료급식소를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의 영세 이름이 ‘안나’ 여서 급식소 이름을 ‘안나 급식소’라고 했는데 전국에서 무료급식소로 처음이다. 그리고 그 후 청소년 쉼터 4곳을 개설해 1년에 운영비가 약 20억 원이 소요된다.    

그가 한국에 오기 전에 로마에서 사제가 되었으나 성당에 소속되지 않고 성당 부속기관인 수도원에 들어가 노숙인들을 위해 봉사를 했다. 그가 한국에 오게 된 동기는 한국의 천주교에 대해 더구나 김대건 신부(1821-1846)는 한국의 최초의 신부로 25세에 순교당한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한국에 왔다. 그는 행복의 비결이 나눔에 있다고 했으며 비록 아르바이트를 해 적게 번 돈이라도 그 돈으로 사랑을 베풀면 그만큼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음으로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함이 목적이라고 했다. 그는 금년 60세로 2014년 ‘호암상’을 받았으며 ‘장기기증’과 ‘사후시체기증’을 했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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