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바로의 섬김과 주님의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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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말은 초사실주의라는 뜻으로 원본을 흉내 내는 복제 기술로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느낌을 주는 예술 양식을 말합니다.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 사진보다 더 진짜 같아서 어느 것이 실제이고 어느 것이 복제인지를 구분을 할 수 없습니다. 하이퍼 리얼리즘이 갖는 의미는 어느 것이 실제이고 어느 것이 복제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어서 가상세계에 눌린 실제를 폭로하면서 나의 나됨을 찾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실적인 묘사나 표현도 결국은 복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상업화 된 예술의 진정성을 회복하자는 의미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섬김에는 세상적 섬김과 주님의 섬김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 시기를 결정하는 결정권이 자기에게 있다면 그것은 주인으로서의 섬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섬김의 대상과 섬김의 때를 결정하는 사람이 내가 되고 결정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은 주인일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으로서의 섬김은 세상적 섬김이지 주님의 섬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섬김은 종으로서의 섬김이기 때문입니다. 성서에 섬긴다는 말과 관련된 단어는 ‘디아코노스’ 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힘껏 일을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종이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고 또는 집사라는 단어로도 번역이 됩니다. 주님의 섬김은 종으로서 다른 이들의 상황과 위치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섬김의 내용과 방법이 아니라 섬김 받는 이들이 원하고 바라는 모습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바로와 애굽 신하들에게 여덟 번째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내 백성을 보내라”고 거듭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바로의 신하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자고 요청합니다. 바로는 모세에게 적절한 타협안을 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배려하여 장정만 보내주겠으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장정만 가서 섬기라” 그러나 이 말은 내보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장정만 보내면 그들의 가족들이 애굽에 남아 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 생각한 바로의 꼼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배려하고 섬기는 모양이었지만 결국 거짓이요 위선이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겨주는 것이 아니고 흉내를 내고 생색만 내고자 모세에게 가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생색만 내는 봉사, 흉내 내는 봉사는 바로의 섬김과 동일합니다. 섬김을 잘못 이해하고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진심이 빠진 모양 뿐인 섬김을 교회 성장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바로와 같은 세상적인 섬김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주신 디아코노스, 진정한 섬김을 실천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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